연둣빛 봄
연둣빛 봄
  • 김순남 수필가
  • 승인 2019.04.18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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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순남 수필가
김순남 수필가

 

연두 물이 들었다. 저수지 둑 아래 낭창낭창 일렁이는 버드나무 잎에 연둣빛 봄이 조롱조롱 달렸다. 노란 개나리꽃이 피었던 자리에 연두색 새순들이 돋아나오고 앙상했던 나뭇가지에 아기 손톱 만큼씩 새순을 내밀어 어제보다 조금 더 연둣빛 물을 들였다. 남녘의 꽃 잔치는 이미 한바탕 끝난 모양이지만 겨울이 긴 이곳에는 더디게 봄이 오고 있다.

연둣빛 이파리들은 하얀 젓니 두 개 드러내고 웃는 아이 같다. 활짝 웃는 아이처럼 보는 이로 하여금 푸른 꿈을 꾸게 한다. 하루하루 다르게 잎을 키워 산야를 초록 세상으로 만들 것이다. 논둑이나 밭 가를 가리지 않으며 산허리 큰 나뭇가지 끝에, 또는 그늘을 드리운 나무들 밑에서도 연둣빛 꿈들은 피어난다.

연둣빛은 새 생명이다. 나뭇잎이나 길가에 풀 포기들도 묵은 잎들을 젖혀두고 새로운 움을 틔웠다. 겨울 동안 추위를 견디며 이 봄을 기다려왔을 터이다. 다시는 살아나지 못할 듯 잠을 자다 훈풍에 고물고물 피어나는 새싹들을 보니 새로운 생명이 경이롭고 죽어 있는 모든 것들마저 살아날 것만 같다.

새들도 신이 났다. 이 나무 저 가지 옮겨 다니며 봄을 노래하느라 분주하고 둥지를 꾸밀 재료들을 물어다 나르기도 한다. 머지않아 새들이 둥지에서 알을 낳아 품고 새끼를 부화시켜 키울 것이다. 새들뿐 아니라 청둥오리들도 봄을 만나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이들은 겨우내 얼어붙은 저수지에 묵은 갈대와 억새 숲에서 겨울을 견뎌왔으리. 할머니 손을 잡고 나들이 나온 아이가 오리 떼를 보고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봄 들판에 연둣빛만 있는 것은 아니다. 보라색 앙증맞은 꽃잎을 피워낸 제비꽃, 꺾으면 노랑물이 번지는 얘기똥풀, 노란색 하얀색 민들레, 이웃집 언니 이름처럼 친근한 명자꽃도 연두색 바탕 위에 꽃들을 피우고 있다. 꽃이 먼저 피었다 지는 진달래나 벚나무에도 연둣빛 새잎들은 피어난다. 연두는 꽃들에 배경이 되어주며 꽃 진 자리에 열매가 맺히면 그 열매를 충실히 키워내 영글게 할 터이다.

오늘 아침에 그들도 연둣빛을 닮아 보였다. 여학생 생활관 앞에서 두 학생의 만나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기다리는 여학생 앞으로 저만치서 남학생 한 명이 빠른 걸음으로 오고 있었다. 여학생도 기다리다 잰걸음으로 남학생 마중을 나섰다. 둘은 발그레 상기된 낯빛으로 손을 잡았다. 아마도 3월에 신입생으로 만난 새내기들 같다. 맞잡은 손을 흔들며 강의실 쪽으로 가는 그들 마음에도 연둣빛 새싹들이 돋아났으리라. 언젠가 연두색 위에 자신만의 색깔로 꽃피울 날을 기대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도 연둣빛 같았으면 좋겠다. 아장아장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들이 마음 놓고 푸른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꿈을 키우는 청년들이 노력한 만큼 연둣빛 위에 보라색, 노란색 또는 빨간색 등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연두색 배경이 되어야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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