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를 만든다
내가 나를 만든다
  • 이영숙 시인
  • 승인 2019.01.2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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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엿보기
이영숙 시인
이영숙 시인

 

“나는 추하지만 예쁜 여자를 얻을 수 있고 나는 절름발이지만 스물네 개의 발을 가질 수 있다. 나는 누구일까?”

자본주의 시대 최고의 신(神)이며 최고선(善)인 돈에 대한 풍자이다. 이 대담한 주장에 자유로울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다. 화폐처럼 인간을 주눅 들게 하고 사랑이라는 본질도 왜곡하는 강력한 힘을 지닌 무기도 없다. 종교마저도 자본주의 속성의 최정점을 찍고 있으니 행복이 소유와 비례한다는 사실은 절대 불변의 법칙인 듯하다. 어쩌다 인간이 종교의 역기능까지 걱정하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가슴 아픈 일이다. 가장 낮고 비루한 마구간의 말구유를 선택하여 오신 예수 탄생의 상징적 의미는 신화일 뿐이며 버리고 버리므로 비로소 무소유의 가벼움을 느끼며 떠난 법정 같은 종교 지도자는 역사 속 위인으로 봉인된 것인가.

지난번 수업 시간에 아이들이 던진 질문이 아직도 가슴을 누른다. 뒷문을 열고 들어오던 한준이가 느닷없이 “사람은 무슨 목적으로 태어날까요? 하고 의미심장하게 묻는다. 왜 그런 질문을 하게 됐느냐고 되물었더니 요즘 김용규 선생님이 지은 『철학 통조림』을 읽고 있는데 인간은 왜 태어났고 어떤 사람으로 살 것인가라는 부분에서 생각이 닿아 고민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 해답을 찾았느냐고 물으니 “내가 나를 만드는 것 같다.”고 답한다. 어떤 방법이 좋으냐고 다시 물었더니 책을 통해서 날마다 새로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초등학생답지 않은 질문과 생각에 다소 충격을 받았고 그 대안이 돈이 아니라 책이라는 사실에 경탄했다.

갈수록 사회 돌아가는 시스템과 구조가 눈에 들어와 좀처럼 미간이 펴지질 않는데 제자 덕분에 그나마 파란 숨을 짓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선 욕망한 만큼 치러야 할 대가가 매우 크다. 그 크기만큼 당연히 사랑은 반비례할 것이다. 이제 건물의 높이만큼 그림자를 드리우듯 허상을 내려놓고 삶을 억압하는 만성적인 피로에서 벗어나 기대어 쉴 언덕이 필요하다.

내게 독서는 가장 행복한 놀이이다. 사람보다 책 사이에 있을 때가 평안하고 행복하니 잘못 사는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알라딘 중고 서점을 주로 이용하는 데 원하는 책을 구매해서 나올 때는 천하를 얻은 느낌이다. 주로 돈에 포획된 모든 소중한 가치들의 복원과 인간해방을 위해 노력했던 마르크스와 짐멜 등과 같은 역사철학이나 인문학 서적을 탐독한다.

최근 연세대 철학과 김상근 교수의 『군주의 거울, 영웅전』과 박웅현 작가의 『다시 책은 도끼다.』 독서는 아주 유익했다. 그들이 피력한 언술들을 따라가며 세상 읽는 재미도 크지만, 그 시선을 좇아 내가 사는 현실을 통찰하며 내 시선으로 만드는 과정이기에 더 의미 있다. 무엇보다 독서는 고루한 의식을 깨고 다양한 분야의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적 사고를 증진하는 길이다. 내가 나를 만든다는 제자의 해답처럼 내게도 독서는 나를 만드는 한 과정이다. 날마다 엄청난 양의 책이 출간되지만 누가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잡지가 되고 고전이 된다. 독서를 통해 오른 경지가 욕망하거나 허상을 드리우지 않고도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처럼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환호하는 삶, 민낯으로도 당당한 삶을 사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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