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계절’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
‘잊혀진 계절’과 잊지 말아야 할 것들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10.3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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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가수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한 줄의 가사 덕분에 10월31일이 되면 해마다 어김없이 들려오는 「잊지 못할」 노래가 되고 있다.

이 노래가 담긴 앨범이 처음 발표된 해가 1982년이었으니, 벌써 36년이 흐르는 세월동안 즐겨 듣고 부르는 노래의 힘은 위대하다.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헤어지는 인연은 어느 시대 어떤 사람에게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그런 별리 앞에서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라고 탄식하며 잊어버리고 싶고, 잊혀진 계절로 버려두고 싶어 노래를 한다.

그 사이 역사와 우리의 삶은 처연하게 흐르고,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던 도도한 시민의 힘도 어느덧 2년이 흘렀다.

돌이켜 생각하면 우리는 촛불을 공동체로 생각했던 것 같다.

촛불은 공동체가 아니다.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광장에 집결했으되, 우리는 일제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가끔 구호에 맞추어 모르던 사람들과 어깨동무를 할 때도 있었고, 일제히 힘을 모아 `박근혜 퇴진과 적폐청산'이라는 같은 목소리를 내기도 했으나 거기에 공동체를 완성해 가는 각자의 사연은 미처 담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2년. 우리는 그때 광장에서의 비장한 진정성과 철저하게 폭력을 배제한 평화를 통해 비로소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예감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러나 그 이념과 대립의 상징을 무너뜨리는 평화의 길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우리는 이제 앞만 바라봐야 할 도전적 세월을 통과해 나를 둘러싼 양옆과 위·아래를 살펴보고 싶은 계절로 돌아와 있다.

보통의 사람과 기꺼이 눈높이를 맞추는, 그리하여 항상 사람을 향하는 대통령을 만났으며, 기회의 평등과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우리 삶에 그런 세상이 왔음을 실감할 수 있는 징후는 별로 많지 않다.

박근혜와 이명박으로 대표되는 돈 받은 사람들은 일단 감옥에 있다. 그러나 말을 사주고 돈을 주거나, 폭행도 주저함이 없이 갑질에 익숙한 사람들은 감옥에서 빠져나오거나, 아예 감옥 문턱에도 도달하지 못한 채 포토라인의 호들갑만 남기고 말았다.

아. 아! 세상은 이런 것인가. 쉽사리 넘볼 수 없을 만큼 준엄한 통치의 권력보다 더 막강한 자본의 철옹성을 이번 세상에는 도저히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삼성이 한반도 평화와 남북화해에 슬그머니 동참하고, 산업자본의 은행자본 소유 금지의 약속은 스르륵 무너진 벽이 되었으며 모든 규제개혁은 온통 재벌자본의 시야에 머물고 있다.

능력과 자질,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양심은 이미 인재 선택을 위한 기준의 잣대가 되지 못하고 있고, 일찌감치 친분관계를 쌓아 왔거나 설익은 비판적 사회활동을 했다는 기준이 우선되는 `그들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말았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그랬다는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람을 향하던 초기의 감성은 사라지고 관료에 의해 재단되는 통계의 허울에 빠지는 순간, 허우적거리는 모습을 감출 수 있는 재간은 이미 없다. 통계는 결과와 예측의 전부를 웅변한다는 관료적 전통과 보수언론의 재단(裁斷)은, 개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위협하는 최저임금의 인간적 감성을 억누르고 과장된 수치(數値)의 각인을 강요한다.

같은 편끼리의 견해차이나 과정의 다양성을 들춰내 도저히 같은 편이 될 수 없음을 예단하면서(장하성과 김동연) 이를 갈등이라 하고, 공개적으로 악수하게 연출하는 것은 변화가 두려운 보수언론의 몫이다.

그런 악수는 결국 갈등이 있으며, 그 갈등을 미봉하고 겉으로나마 같은 편으로 일단은 남을 것이라는 의심을 확인해주는 장면으로써 고도의 기능을 지닌다.

잊혀 진 계절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런 것들이다. 변하려는 노력 대신 더욱 굳건한 철옹성을 쌓고 있는 재벌과 관료, 보수언론의 적폐를 무너트리는 것. 정권도 다시 우리 모두가 촛불의 주인공임을 잊지 말아야 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 시월의 마지막 밤'. 결코 슬퍼할 수도 슬퍼해서도 안 될 우리들의 스산한 계절. 잘 가라 시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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