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한 행정도 공범이다
비정한 행정도 공범이다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10.2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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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두부 2모로 끓인 국을 50명의 어린이가 먹었다. 계란 3개가 들어간 계란탕을 아이들 90명이 나눠 먹었다. 닭 3마리를 넣어 끓인 닭곰탕은 어린이 200명이 먹었다. 일부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급식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정부의 급식 지원금은 이 야박한 식탁을 거쳐 원장의 호주머니로 빠져나갔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이 국가와 사회로부터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이다. 문제를 야기한 원장들이 도마에 올라 여론의 지탄을 받고 있지만, 그들의 탐욕에 충실하게 종사한 무능한 행정을 공범으로 꼽지 않을 수 없다.

어린이집과 사립유치원의 급식은 현행 학교급식법의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다. 인지력도 항변능력도 없는 아이들의 급식이야말로 초·중등학교에 우선해 법으로 관리하고 감독해야 할 대상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아이들 급식을 법 바깥에 방치해 시설 운영자들의 먹잇감이 되게 했다.

급식 문제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사립유치원에는 연간 2조원의 혈세가 지원되지만 투명하게 집행 내역을 점검할 회계시스템이 없다. `에듀파인'이라는 국정 시스템을 도입해 투명성을 검증받는 사립학교들과는 다르다. 교육부는 에듀파인 도입을 거부해온 사립유치원에 속수무책이었다. 원생을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번번이 무릎을 꿇었다. 지난 2016년 회계시스템을 만들어 올해부터 시험 시행하기로 했으나 아직 손도 대지 못하고 있다. 관련예산은 지난해 불용 처리됐다.

유치원의 비리를 덮어주는 데는 적극적이었다. 감사에서 숱한 부정을 적발하고도 공개하라는 학부모들의 항변에는 수년째 귀를 닫았다. 공개를 요구하는 사회단체와는 소송까지 벌이면서 비리 유치원에 울타리를 쳐줬다.

징계는 형식에 그쳤다. 7억원이나 횡령했다가 적발된 경기도의 한 원장의 사례를 보자. 해당 교육청은 지난해 7월 그를 파면 조치했다. 그러나 해임된 원장은 총괄부장을 맡아 원장 역할을 고스란히 수행하고 있었다. 이른바 `셀프징계'때문이다. 현행 사립교육법은 구성원 징계를 설립자가 하도록 돼 있다. 설립자인 원장은 자신을 파면하고 원장 권한을 행사하는 총괄부장에 임명한 것이다. 비리로 처벌받고도 간판만 바꿔 재개원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지만 교육부는 관련법 보완에 손을 놓고 있다.

사립유치원 모임인 한국유치원총연합회가 그제 “공금횡령·유용으로 징계받은 교육부 공무원 실명을 공개하라”고 나섰다. 이들이 만든 입장문 제목이 `사립유치원, 교육공무원보다 훨씬 깨끗해!'이다. 교육부를 압박하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국민적 지탄을 받는 집단으로부터 이런 오명을 듣는 것이 교육부의 현실이기도 하다. 나라의 미래인 아이들이 갈취당하는 현장을 외면한 비정한 행정이 자초한 결과이다.

국회도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을 비리 복마전으로 전락시킨 혐의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경찰이 어린이집단체가 일부 국회의원과 보좌관들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한 의혹을 포착하고 수사 중이다. 국회도 그동안 이들 단체에 휘둘려온 책임을 엄중하게 성찰할 때가 됐다. 지금 사립유치원들은 비리를 폭로한 국회의원과 언론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적반하장의 태도로 나오고 있다. 믿는 구석이 있어 보인다. 국회가 해법 마련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여론의 불똥이 그리로 튈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교육부는 비리 유치원 실명공개, 내년 상반기까지 종합감사, 비리신고센터 운영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립유치원에 교육부 지정 회계시스템을 구축하고 지원금을 `보조금'으로 전환해 횡령과 전용의 여지를 없애야 한다. 처벌받은 원장이 다시는 유치원에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징계규정도 강화해야 한다. 더불어 국공립 유치원 확대정책에 속도를 내야 함은 물론이다.

촌각을 다퉈 무도한 현장을 바로잡는 것이 실질적 피해자인 아이들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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