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e Too’를 유발하는 패션이란 없다
‘# Me Too’를 유발하는 패션이란 없다
  • 이수경<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이미지소통전략
  • 승인 2018.03.21 17: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예술산책
▲ 이수경<충청대 패션디자인과 교수 · 이미지소통전략가>

당신이 숨 쉬고 있으면서 질식한다고 상상해 보라 / 새장 안에서 중얼거리고 소리치지만 아무도 듣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내가 당신이 있는 그 어둠 속에 있다고 상상해 보라/ 나는 거기 갇혀 있다/ 나는 길을 잃었다/ 거기 옷 속에서

(이브 엔슬러 `버자이너 모놀로그'부르카 아래서)



부르카(Burka)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가리며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눈 부분만 뚫어 망사로 가린 아프칸 여성이 주로 입는 옷이다.

역사적으로 이런 복장의 관습은 이슬람 이전시대부터 존재했는데 구체적으로 지켜져 내려온 것은 종교적 의미를 담은 다음의 꾸란에 의해서이다.

`밖으로 나타내는 것 이외에는 유혹하는 어떤 것도 보여서는 아니 되니라(중략) 그리고 성에 대해 부끄러움을 알지 못하는 어린이 이외의 자에게는 아름다운 곳을 드러내지 않도록 해야 되니라.'(24:31) 라고 명시돼 있다.

이슬람의 보수적인 시각에서는 가정 밖에 있는 여성은 유혹이며 사회적 혼란의 원천으로 간주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사회의 전반적인 성에 관해 벌어지는 문제들이 여성 옷차림의 문제인양 터부시해왔다.

패션과 에로티시즘은 패션의 역사 동안 수없이 함께했고 성(性)에 대한 직설적인 표현을 망설인 탓에 패션은 우리에게 민감하고 자극적인 본능을 감각적인 표현으로 보여준다. 시각적인 자극에 신체로 반응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인지 검은색으로 온몸을 칭칭 싸맨 패션보다 자극적인 옷차림이 눈에 띄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 당연함이 최근 화두 되고 있는 권력에 의하고 지배구조에 의한 성폭행까지도 당연한 것인 양 만들 수는 없다는 것이다. 패션은 옷 그 자체를 뜻하지 않는다. 유행, 양식, 스타일, 방식 등 눈에 보이지 않아도 분명히 존재하는 이미지와 대상을 가리킨다.

패션의 문화를 입는 우리는 먼 세계가 아닌 가까운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누군가의 누군가에 의한 미투운동에서 과연 무엇을 보고 느끼고 있는가?

입은 채 방어하고, 걸치고 경계하고, 두른 채 저항하며, 그럼에도 함부로 벗지 않겠다는 무언의 약속이 패션문화이지만, 그 속에 함께하는 지배권력의 속성은 의미 없는 무언의 의무를 요구하고, 가해자 없는 폭력이 침묵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인 모순의 정치가 아닐 수 없다.

여성들의 노출이 성폭력을 유발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잘못된 통념이다. 성폭력은 계절과 상관없이 일어나며, 노출이 많은 옷을 입은 여성에게만 성폭력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개인의식의 차이와 가치관의 문제다.

미투운동은 남들 다하는데 나만 안 하면 대중에게서 소외될 것 같아 참여하고 동조해야 하는 찬반운동이나 편견 중 어느 하나가 아니다.

누구든 패션으로 인간을 지배할 수 있는 비결은 따로 없다. 패션은 미투도, 유투도 유발하지 않는다. 인간이기를 포기한 누구 때문에 표현할 수 있는 자유를 속박당하지도 말고 자신의 그릇된 행동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 `무엇 때문에'라고 핑계 대지도 말자.

당신의 미투 또는 다른 이에 의해 불리게 될지도 모르는 유투가 아닌 더불어 사는 우리를 위해 공감할 수 있는 위드유가 있다면 나는 오늘 무엇을 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