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은 어디 가고 변명만 남았나
초심은 어디 가고 변명만 남았나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7.05.30 18: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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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김금란 부장(취재3팀)

세상 일이 그렇다. 열심히 일한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밤새 책을 본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살기가 쉽지 않다. 이런 세상에 초심을 지키며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최근 서원대학교 손석민 총장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단지 공용광장에서 자녀의 호화로운 생일잔치를 열었다가 여론의 비난을 샀다. 초등학생인 자녀에게 바쁜 아버지가 평소 놀아주지도 못해 생일만이라도 친구를 불러 함께 놀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에어바운스 놀이기구와 이동식 수영장도 설치하고 출장뷔페까지 불렀다. 요란스럽게 풍선도 달려있고 놀이기구도 있어 아파트 단지에서 입주민을 위한 행사인 줄 알고 자녀를 데리고 갔던 주민은 입장이 안된다는 말에 기분이 상해 발길을 돌렸다고 한다. 누구는 자녀에게 아버지로서 미안한 마음에 수십 명의 친구까지 초대한 생일잔치를 준비했는데 또 다른 아버지는 자녀 앞에서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조금은 지나친 생일잔치를 열어 준 것이 무엇이 문제냐고 반박할 수도 있다. 또한 정식 허가 절차를 밟아 광장을 사용한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교육기관 수장이라는 총장으로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손 총장의 자녀 생일잔치 얘기를 들은 한 학부모는 농담처럼 “며칠 뒤 딸아이 생일에 에어바운스도 못 빌려오고 출장 뷔페도 못 부르는데 아버지 자격이 있냐”며 “차라리 무릎 꿇고 그냥 빌어야겠다”는 자조 섞인 말로 위로를 삼았다.

5년 전 서원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한 손 총장의 모습은 신선했다. 40대 젊은 총장의 열정을 쏟아 학생들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고 2015년엔 쪽방촌 주민을 돕기 위한 `라이스 버킷 챌린지'에 참여해 쌀 80㎏을 지게에 짊어지고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 쌀 기부를 약속하기도 했다.

손 총장은 결국 학내 구성원과 아파트 입주민들에게 공식 사과를 했다. 손 총장은 “지역사회를 대표하는 고등교육기관의 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제가 좀 더 모범적 역할을 통해 대학의 위상을 높이지 못하고 학교의 명예를 떨어뜨리게 된 점을 마음속 깊이 반성한다”며 사과의 마음을 전했다.

초심 잃은 이들을 보려면 인사 청문회를 지켜보면 된다. 새 정부가 지명한 장관 후보자들의 면면을 들여다보면 법이라는 것이 무용지물임을 느낀다. 장관 후보자들의 출중한 능력을 국가를 위해 활용하려면 개인의 위장전입이나 세금탈루, 병역면탈 등은 애교로 넘겨야 하는지 의구심이 든다. 최근 만난 한 공무원이 답답한 마음에 출근 전 남편과 나눈 대화를 들려줬다. 그녀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인사청문회에서 단골처럼 등장하는 데 후보자들의 가벼운 위법 사실은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거 아닌가?”라고 물었다. 그녀의 남편은 “그래도 안되지”라는 단호한 답변을 던졌다. 문재인 대통령이 밝힌 고위공직자의 5대 배제 원칙(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 전입, 논문 표절)이 서민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잣대가 되는 반면 사회의 지성인으로 불리는 특권층에게는 예외인 모양이다. 고위 공직자들이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이나 서민이 자식을 대하는 마음은 같다. 장관 후보자들이라고 해서 위장전입도 병역 면탈도 대통령의 말처럼 국민의 양해가 필요한지 의문이 든다.

서민들은 집으로 날라온 범칙금 고지서만 봐도 깜짝 놀란다. 법규 위반으로 벌점도 걱정해야 하고, 벌금을 내고 난 후 다음 달 생활비도 걱정해야 한다. 초심을 유지하는 것은 힘들다. 우리 사회가 언제까지 잘난 사람들의 변명을 듣고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줘야 하는지 이번만큼은 짚어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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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한 2017-05-30 21:51:51
대한민국의 또 하나의 적폐. ( 지방 단체장들과 언론의 유착 심각) : 생일파티 기사댓글을 읽어 보면서 충북청주의 강력사건,퍠륜사건, 사회적 물의 사건이 많다는 내용들이 눈에 띄었다. 이는 사회적 감시자의 역할을 해야할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때문이다. 그 단적인 예가 서원대 임시이사회의 불법행위로 현재의 서원대이사회가 승인난 것이 탄로 났음에도 보도되지 않고 있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