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숭아 물들이기
봉숭아 물들이기
  • 임현택<수필가>
  • 승인 2016.06.14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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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임현택

거울보기가 싫어졌다. 사진 찍는 것도 거북하다. 뿐인가 체중계에 올라가는 것은 더욱더 끔찍스럽다. 흘러가는 물살 위에 떠밀려가는 나뭇잎처럼 세월의 흐름에 온몸을 맡기다 보니 어느새 슬그머니 눌어붙은 살들은 체중계 바늘이 반을 훌쩍 넘었다. 겨우내 게으름으로 체중계 숫자가 정확히도 정곡을 찌르고, 아래 뱃살과 겨드랑이가 두둑해진 몸, 한 시간이 60분이던가 체중계가 60분 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옷이 얇아지는 계절, 조급함에 급기야 헬스장을 찾게 되었고 다이어트 식품을 고르기 시작했다. 두툼해진 살과의 전쟁, 혹여나 얇아진 실루엣에 들킬까 봐 조바심을 내며 자꾸만 옷을 끌어내리기 일쑤다.

장롱 속을 뒤적여 봐도 도무지 입을만한 옷이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팔뚝에 꽉 낀 옷이 실랑이라도 하듯 잘 벗어지지 않는다. 먼 옛날로 돌아가고픈 마음은 없다. 다만 몇 해 전의 몸매가 그리운 서글픈 마음에 한숨이 터져 나온다. 도대체 세월은 어디로 흘러가는 걸까? 방송 속에 연예인들은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는 양 그대로 그곳에 머물고 있는데 나이가 좀 먹었다고 조금 나태해졌다고 이렇게 이탈을 했으니 말이다.

신발장 깊숙이 있던 런닝화를 챙겨들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조금씩 욕심이 생기면서 시간을 늘려 러닝머신 위를 달렸더니, 무리였는지 어느 날부터인가 엄지발톱이 까맣게 변해갔고 이내 빠지고 말았다. 날씨가 더워지면 샌들을 신어야 하는데 발톱이 없으니 괜스레 난감해진다. 여름이 되기 전에 발톱이 자라야 할 텐데. 발 아픈 걱정보다는 발톱이 먼저 걱정된다. 고작 발톱 하나 까맣게 죽어 없어졌다고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이라니.

빠진 발톱 밑은 얇고 볼록하게 못생겨 거의 발톱이라고 보기 어려운 발톱으로 변했다. 궁여지책으로 발톱화장을 하기로 했다. 못생기고 얇아진 발톱 위에 파란 바다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검은색으로 점을 찍어 별처럼 모양을 내 보았다. 이상스럽지만 울뚝불뚝하게 올라온 발톱보다는 한결 눈으로 보기에 좋아 보이는 것이 내심 네일아트 매력이 마음에 들었다.

현 세대 젊은이들에게 인기인 네일아트는 고대 이집트와 중국에서 신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사용되었다고 하나, 문헌에 보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봉숭아 물들이기로 손, 발톱에 화장했다. 붉은색과 향기가 해충들이 피한다는 생각으로 울 밑에나 장독대 주변에 봉숭아를 심어 집안에 악귀나 백귀를 막으려는 뜻으로 심었다지만, 여인들은 예쁜 봉숭아 물들이기에 더 마음이 바빴을 것이다.

어릴 적, 어머니는 봉숭아꽃과 잎을 적당히 말려 곱게 찧어놓았다. 초저녁부터 어머니 앞에 손을 내밀며 순서를 기다리던 그 시절, 손톱 위에 올려진 봉숭아를 비닐로 돌돌 말아 노란 고무줄로 묶어서 다음날 아침까지 물든 손톱을 보려고 아픔을 참아야 했다. 행여나 수면 중 빠질까 잠을 설치던 그때, 물질만능시대 부족함이 없이 풍족한데도 외려 그때가 아련하게 떠오르는 건 추억 때문일까? 그리움 때문일까?

지금도 이 시대에 어르신들은 등 따습고 배부르면 행복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옛날 어려운 시대를 우회적으로 말씀하시는 어르신들, 특히 ‘노비의 자식들은 손발톱을 깎아본 적이 없단다.’ 손, 발톱이 자라기 전에 노동으로 다 닳아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미(美)와는 상관없이 옛날처럼 먹고사는 걱정을 하는 사람보다는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모습으로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좀 더 많은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요즘 사람과 노비의 상반된 모습에 묘한 기류가 흐르는 밤이다.

발톱 하나가 검어졌다고 발톱 하나가 빠져 버렸다고 누가 흉을 보는 것도 아닌데 미에 대한 여자의 숨겨진 원초적 본능일까. 아님 아름다움에 대한 자연스런 욕망일까.

오늘은 밤하늘별보다 발톱 위에 별들이 더 빛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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