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223>
궁보무사 <223>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1.2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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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가경처녀와 부용아씨

"으응 뭐 말인가 아, 그거 음, 조금 귀찮긴 하지만 어쩌겠나 내 친구 율량이 그렇게 도와달라고 생떼를 쓰니. 이번에도 내가 수고를 좀 해 줘야지. 으흠."

내덕은 찾아온 수동을 힐끗 한 번 쳐다보고는 본척만척 거드름을 피워가며 말했다.

"그거 참 잘 됐습니다. 마침 그곳에 제가 내덕님을 모시고 함께 가 본 적이 있었으니, 이번에도 제가 따라가서 제 힘이 닿는 한 열심히 도와드릴까 하는데."

수동이 내덕의 눈치를 살피며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뭐 뭐야 자네가 이번 일에 한 다리 끼겠다고"

"네. 열심히 잘해 볼 자신이 있습니다."

"안 돼! 이번에는 내가 아예 새판을 짜고 말거야."

내덕이 아주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네"

"이번엔 지난번 같이 갔던 사람들을 모두 빼놓고 다른 사람들을 골라서 데리고 갈 거야."

내덕이 여전히 퉁명스럽게 대답하며 슬그머니 시선을 딴 데로 돌렸다.

"그래도. 한 번 가봤었던 사람들이라면 길을 찾기가 한결 수월할 텐데요"

"아, 필요 없네! 모든 것이 다 '내덕'인 줄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자들이랑 내가 어찌 손발을 함께 맞춰가며 일을 다시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자네도 어서 가보게!"

내덕은 상당히 불쾌한 듯 인상을 팍 찡그린 채 손을 앞으로 휘휘 내저으며 말했다. 아마도 어제 당한 그 털가죽 건 때문에 어지간히 심기가 불편했던 모양이었다.

"저어, 내덕 어른. 이거 매우 약소하지만 그냥 받아두시죠."

수동은 재빨리 내덕의 소매 안에 준비해온 금반지 한 개를 쏙 집어넣었다.

"으응 아니, 이게 뭔가"

내덕은 재빨리 자기 소매춤 안으로 손을 넣어가지고 방금 전 수동이 집어넣었던 금반지 한 개를 도로 끄집어내었다.

"아니, 왜 이런 금반지를 나에게"

"실은 제 마누라 것인데, 글쎄 그 여편네가 어디 가서 점을 한 번 쳐보고 나더니 자기가 끼고다니는 금반지에 나쁜 액(厄)이 들어있다며 그걸 빼서 나한테 주고는 멀리 갖다 내버리라고 합디다. 그래서 하는 수없이 제가 받긴 했는데, 문득 내덕님 생각이 떠올라 이리로 왔습지요. 조금 께름칙하시겠지만 그냥 너그러이 이걸 받아두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허! 아니, 남이 액땜을 하겠다며 버리려는 금반지를 내가 왜 갖나 하지만 필요가 없다고 그냥 내다 버리는 거라면 내가 그걸 줍는 셈치고 가질 수도 있는 법이지. 원래 똑같은 풀일지라도 뱀이 먹으면 독이 되지만 소가 먹으면 젖이 되거든."

내덕은 이렇게 말하고는 방금 꺼내든 금반지를 자기 소매 안으로 다시 집어넣었다.

"그건 맞는 말씀이옵니다. 헤헤헤."

"으음. 아무튼 기왕에 찾아와 주었으니 이번 가는 길에 자네도 데리고 가겠네."

"예 아이구, 네네. 감사하옵니다. 헤헤헤."

수동은 정말로 기분이 좋았던지 환한 얼굴을 해가지고 내덕에게 연신 허리를 굽실거려댔다. 그런데 주위가 갑자기 그믐날처럼 어두워지자 두 사람은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고 얼른 둘러보았다.

지금 이 두 사람을 단단히 에워싸고 있는 사람들.

바로 어제 가경처녀의 집으로 함께 찾아갔었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입가에는 한결같이 모두 간사하고 비굴한 미소가 머금어져 있었고, 각자 손에는 뇌물용으로 준비해온 듯 한 마포나 짐승 털가죽, 따위들이 들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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