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기념관·천안시 ‘도긴개긴’
독립기념관·천안시 ‘도긴개긴’
  • 조한필 기자
  • 승인 2015.12.15 19: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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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 조한필 부국장(내포)

#1. 1988년 2월 13일 독립기념관은 목천~진천 도로 변에 매몰돼 있던 안정복(1712~91) 전 목천현감 선정비를 발굴했다. “선정비가 파손 유실될 위험에 처했다”는 천안 향토사학자 이원표씨(작고)의 제보에 따른 것이었다. 곧바로 선정비는 독립기념관 관내로 옮겨졌다. 하지만 천원군(현 천안시)나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의 허가 없이 ‘임의로’ 이뤄진 일이라 찜찜했다. 천원군에 공문을 보내 선정비를 독립기념관에서 보전하겠다는 뜻을 전했다.

천원군으로부터 ‘귀 전시관서 보전할 것을 통보하오니… 이전 조치하시기 바랍니다’라는 5월 31일자 회신을 받았다. 선정비를 벌써 옮겨 놓고 이제 옮기는 것처럼 꾸며서 받아낸 공문이다.

#2. 2015년 10월 22일 향토사학자 임명순씨는 선정비를 돌려달라는 민원서(천안동남구문화원 향토사연구회 회원 일동 명의)를 독립기념관에 보냈다. ‘동사강목’이란 역사책 저자로 유명한 안정복은 목천현감 재직 때(1776~79) 선정을 베풀고 향토지 ‘대록지’까지 저술한 실학자라며 독립기념관서 홀대받는 선정비를 천안시(천안박물관)에 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후 임씨는 발굴의 합법성 여부를 따지고 천원군으로부터 선정비 기증서나 영구위탁 증서를 받았는지도 물었다. 또 천안시에는 독립기념관에 선정비 영구 보전을 허락했는지 아니면 일시적 보관을 의뢰했는지, 그리고 정식으로 반환 요청할 의사는 있는지 알고 싶다고 요청했다.

독립기념관과 천안시는 이런 임씨에게 회신을 보내왔다. 질문 핵심은 피해가는 맥 빠진 대답들이었다.

독립기념관은 기증서나 영구위탁 증서가 있으면 제시해달라는 요청은 애써 외면하며 “천원군수에게 영구 보존하고 전시자료로 활용할 뜻을 표하고 협조를 요청해 허가를 받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당시 천원군 공문 어디에도 ‘영구(보전)’란 단어는 보이지 않는다.

두 기관은 임기응변식 또는 회피성 답변만 내놓고 있다.

독립기념관은 선정비 안내판도 없다는 지적에 “향후 안내표지판을 설치하여 국민들에게 안정복의 업적을 널리 알리도록 하겠다”, 발굴의 불법성 지적에 “임의로 발굴한 바 없으며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우리 관으로 이전하여 보존 및 활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문화재는 관리 당국의 사전 허가 없이 발굴되고, 옮겨질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독립기념관이라도 당국 허락없이 지상 혹은 땅속 문화재를 이동시킬 수 있는 권한은 없다.

독립기념관은 선정비를 ‘보존’하고 있다고 답했다. 보존이란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 그런데 일부 글씨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이끼·선태류 번식이 심하고, 나무 밑에 세워져 조류 분비물에도 무방비 상태다. ‘활용’한다고 했지만 관람객 동선에서 벗어난 곳에 안내표지판도 없이 27년간 서 있었다.

천안시 답변도 맥 빠지긴 마찬가지다. 구체성이 전혀 없다. 소유권 귀속과 관련해선 “당시 문서 및 관련 법률에 의거 검토할 사항”이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법률적 검토를 하겠다는 건지 말겠다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또 정식 반환요청에 대해선 “앞으로 독립기념관과 협의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했다. 언제 협의할 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급한 불은 피하고 보겠다는 전형적 복지부동이다.

시민들은 향토사학계의 안정복 선정비 반환 운동에 대해 “시가 해야 할 일을 시민들이 하고 있다”며 박수를 보내고 있다. 천안시는 시민이 열어 놓은 길도 못 간다는 얘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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