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좋다
가을이 좋다
  • 임성재<시민기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5.11.10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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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 임성재

올해는 유난히 단풍이 곱다. 산과 들에는 울긋불긋 제각각의 색으로 물든 나뭇잎들이 자태를 뽐낸다. 도심 한복판의 가로수들도 나름의 가을 색으로 물들었다. 샛노랗게 물든 은행잎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한가로이 거리를 걷고 싶은 충동을 불러오고, 누렇게 물들어 거리를 뒹구는 플라타너스의 잎들은 허망하게 보내온 시간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여름, 숲은 거대한 녹색의 덩어리였다. 여러 종류의 나무들이 짙푸른 녹색으로 물든 숲은 녹색만이 유일한 생명인 것처럼 일사불란해 보였다. 가을이 오면서 숲은 변해 갔다. 녹빛 이 점점 옅어지면서 나무들은 자기만의 색깔로 물들기 시작했고 한 덩어리로만 보이던 나무들의 윤곽이 뚜렷해졌다. 가을이 깊어질수록 숲속의 나무들은 각자의 독특한 색깔로 깨어났다. 단풍이 절정을 이룬 지금 숲에는 온갖 색깔의 향연이 펼쳐지고 있다. 여름 산에선 보이지 않던 그렇게 많은 종류의 나무들이 함께하고 있었다니 경이로울 뿐이다. 녹색으로 물들었던 풍요로움보다 나뭇잎은 떨어져 앙상해 지지만 자신의 색깔을 드러내며 물들어가는 가을이 더욱 아름답게 와 닿는 것은 나이를 먹어가는 탓도 있겠지만 획일화의 시대로 회귀하려는 요즈음의 세태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나는 5·16쿠데타가 일어나던 해에 국민(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3공화국과 유신독재 치하에서 대학교육을 마쳤다. 그 때 우리는 5·16을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구국의 결단으로 나선 혁명’이라고 배웠다. 또 동학농민혁명은 ‘동학란’이라고 배웠다. 조선의 봉건지배를 타파하고, 외세로부터 국권을 지키고자했던 민초들의 봉기는 조정에 불만을 품은 동학교도들이 주축이 된 농민들의 반란이었고, 전봉준은 반란의 수괴였다. 아무런 의심 없이 5·16혁명과 동학란을 되 뇌였던 내가 잘못된 역사교육에 분개하게 된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도 한참 시간이 지난 후였다. 방송국에 입사한 뒤 업무상 우리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다양한 역사책을 읽으면서 식민사관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 정권의 입맛대로 정권이 말하고자 하는 대로 쓰여 지고 가르쳐진다는 사실에 분개했다. 결국 우리가 배운 교과서는 군사쿠데타와 유신정권의 정당성을 홍보하는 도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과 새누리당은 좌 편향된 역사교과서를 바로잡겠다며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선언하고 나섰다. 지구상에서 북한을 비롯한 몇몇 독재국가에서 밖에 시행하지 않고 있고,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일본의 아베정권도 시도하지 않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행적을 감추고 유신독재를 미화하기 위함이라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하다. 1987년 민주화운동이후 국민의 힘으로 되돌려 논 교과서민주화를 다시 유신과 독재의 암흑기로 돌려놓겠다는 의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갱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쓰고 있다. 역사란 그렇게 다양하게 해석되고 읽힐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역사를 국민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획일화하려는 의도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우리 아이들에게 또 다시 거짓되고 획일화된 역사교육을 받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역사에 대한 해석과 교육도 가을 단풍처럼 각각의 빛깔을 온전히 담아내고 그것들이 모여 다양한 색깔로 함께 물들 수 있을 때 우리는 좀 더 아름다운 미래의 역사를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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