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 (名畵)
명화 (名畵)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5.09.21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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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 신금철 <수필가>

“할아버지, 제가 차車, 포包 떼어 드릴 게 저하고 장기 한 판 두실래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손자의 말에 고희를 넘긴 남편은 어이가 없다는 듯 껄껄 웃었다. 나 역시 어느새 할아버지와 장기를 둘 정도로 훌쩍 큰 손자가 대견스러워 등을 어루만지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남편은 손자에게 장기 두는 방법은 물론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양보, 침착함도 함께 가르쳤다. 의젓한 손자는 장기 실력 못지않게 시합에 몰두하는 진지함과 상대방을 배려할 줄 아는 태도를 보여주어 내 마음을 흐뭇하게 해준다.

나는 아들 삼 형제를 두었다. 직장생활에 성실하려고 노력했고, 가정 살림도, 아이들 키우는 일에도 충실하려고 안간힘을 쓰느라 몸도 마음도 힘이 들었다. 아이를 낳을 때마다 한 달도 제대로 쉬지 못하여 붓기가 빠지기도 전에 푸석한 얼굴로 출근하면서도 세 아이들이 반듯하게 잘 자라주는 기쁨이 있었기에 힘든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40년 직장생활을 끝내고 손자 손녀를 키우면서 내 아이들 키울 때와는 또 다른 기쁨을 맛보고 있다. 공주라 자칭하며 예쁜 얼굴로 온갖 재롱을 부리는 손녀와, 먹을 것이 있으면 할아버지 할머니 입에 먼저 쏙 넣어주는 손자의 의젓한 모습에 우리 부부는 삶의 보람을 느끼며 흐뭇한 웃음을 짓는다. 손자 손녀를 키우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온종일 기저귀 갈고, 우유 먹이고, 아기가 아파 칭얼거리면 몸이 달아 진땀을 흘렸고, 병원을 쫓아 다니다 보면 저녁에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그러나 하루가 다르게 예뻐지고 재롱 피우는 녀석들로 고단함을 참을 수 있었고, 직장에 다니는 젊은 엄마들이 아기를 맡길 곳이 없어 쩔쩔매는 모습을 볼 때면 아기도 엄마도 측은해 보여 손자 손녀 돌보기를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인 손자의 학습도 도와준다. 손자는 영특하여 이해가 빠르고 문제 해결능력이 탁월하며 책을 많이 읽어 상식이 풍부하다. 특히 과학에 관심이 많아 어려운 질문으로 나를 당황하게 할 때면 ‘어느새 이렇게 많이 컸을까?’ 하는 마음에 대견하고 흐뭇하다. 손자는 성격도 밝고 씩씩하여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좋아 학급의 부회장이 되어 우리 부부를 기쁘게 했다. 임명장을 받아오던 날 우리 부부는 손자를 끌어안고 아들이 반장에 뽑혔던 날보다 더 기뻐했다.

교사란 직업이 힘든 것을 알기에 며느리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저녁식사 준비를 다 해 놓는다. 삼대가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 후 손자는 몸을 날리며 태권도를 선보이고, 이에 질세라 손녀는 유치원에서 배운 율동을 선사하여 하루의 피로를 풀어준다. 키워주고 가르치고 손자 손녀 뒷바라지에 비록 몸은 고달프지만, 손자 손녀를 키우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귀한 행복이다.

2월에는 남편의 고희를 맞아 아들 삼 형제가 가까운 친척들을 모시고 조촐한 축하연을 베풀었다. 자식들에 이어 손자 손녀까지 키우느라 힘이 들지만 건강한 아들 며느리와 손자 손녀의 축하에 모든 힘겨움이 한 방에 날아가고 우리 부부는 매우 행복했다. 특별 이벤트인 손자의 축사는 내 생의 행복한 날로 기억될 만큼 흐뭇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저희들을 사랑으로 키워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훌륭한 사람이 되어 은혜를 꼭 갚을게요. 오래오래 사세요”

오늘도 새로 산 핑크빛 원피스 자락을 휘돌리며 어설픈 발레를 자랑하다 넘어지며 까르르 웃는 손녀, 장기를 두는 반백의 할아버지와 손자의 다정한 모습은 한 폭의 명화(名畵)로 즐거운 우리 집에 행복을 수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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