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들의 분노조절장애
현대인들의 분노조절장애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5.09.13 19:5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데스크의 주장
▲ 연지민 취재3팀장 <부장>

분절되고 분화되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서일까. 요즘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아졌다. 국제화에 발맞춘 언어의 변질은 물론이고, 병명에서도 낯선 명칭들이 수두룩하다. 

그중 하나가 분노조절장애다. 병명 그대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말과 행동이 돌발적으로 격렬하게 표현되는 현상을 일컫는 데 과도한 스트레스나 화가 원인이다. 산업화 이전에는 지나친 분노 억압으로 울화병이 많았다면, 이제는 지나친 분노 폭발로 분노조절 장애를 겪는 현대인이 많아지고 있다는 반증이다. 현대인병으로 새롭게 인식되고 있는 분노조절장애는 그러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가 병명조차 인지하기도 전에 이미 우리 가까이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드러났다는 사실이다. 올해 사회 문제가 되었던 인분 교수, 상주 경로당 농약 할머니 사건, 진주 묻지마 살인 사건, 20대 노인 폭행 사건들은 모두가 분노조절장애에서 비롯된 것들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이혼한 아내가 다른 남자와 만난다고 살해한 전 남편과 여자친구의 외도를 의심해 목 졸라 살해 후 장롱에 숨긴 동창 남자친구, 아들의 여자친구와 말다툼하다 흉기로 살해한 60대 여성의 소행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기는 한 것인지 혼란스러울 정도다.

분노조절장애는 학교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분노조절장애 학생은 늘어나고 있지만, 교육계는 무방비로 손을 놓고 있다. 학생 수가 많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이를 인정하지 않는 부모와의 갈등이 또 다른 학교문제로 확산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실제로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한 학교 교사의 말에 따르면 시험 당일은 학교 전체가 비상이라고 한다. 시험에 따른 압박을 이기지 못한 학생은 소리를 지르거나 책상을 던지는 난동도 서슴지 않는다고 한다. 결국, 혼자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지만 매번 이런 식의 되풀이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한다. 학생 스스로 피폐해지는 것은 물론, 교사와 전체 학생이 겪는 불안도 분노조절장애인 못지않게 크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분노조절장애를 겪는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보다 약자이든 강자이든, 심지어 자기 자신이든 가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혹여라도 학생이 잘못될까 두렵다는 교사의 말은 교육현장의 심각성을 대변해준다.

강력 사건이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건·사고는 비일비재하다. 운전자 간 끼어들기 시비는 보복운전으로 이어지고, 눈이 마주쳤다는 이유만으로 폭행을 일삼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평소에 착한데 운전대만 잡으면 이상해지고, 평범한 사람들이 사소한 말다툼 끝에 살해라는 극단적 분노로 폭발하는 현실을 보면 안전의 출구조차 멀게만 느껴진다. 

묻지마 총기사고가 빈번한 미국에서 얼마 전 분노조절장애에 대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미국인 9%가 분노조절장애를 겪고 있다고 한다. 이중 잠재적 폭력성향을 가진 분노조절장애인들이 총기를 많이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빈번한 총기사고의 원인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이처럼 묻지마 사건의 이면을 보면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사건·사고들이 대부분이다.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방식의 분노조절장애는 세상이 각박해질수록 더 커질 공산이 크다. 사회적 안전망이 요구되는 이 시점에서 우리 각자가 자신의 분노지수를 점검해 보는 것은 어떨까 생각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