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의 밤
마카오의 밤
  • 임정숙 <수필가>
  • 승인 2015.03.23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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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정숙 <수필가>

밤에 피는 꽃처럼 화려한 도시의 명성답게 마카오 베네시안 호텔의 카지노는 세계적인 규모를 자랑할 만했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카지노의 한 판이 눈앞에 펼쳐지는 광경에 입이 좀처럼 다물어지질 않았다. 

운동장처럼 넓은 카지노에 가득 차 있는 수많은 사람의 묘한 눈빛은 나와는 무관한 세상 같았다.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수백, 수천억 셀 수도 없는 엄청난 돈이 하루 저녁에 오가며 인생의 희비가 엇갈리는 곳, 구경꾼으로 바라만 보아도 영혼의 미아가 되는 듯했다.

어쩌다 나도 예사롭지 않은 꿈이 아까워 복권 한두 장 사보는 게 전부이지만, 일확천금의 요행은 바늘귀에 낙타가 들어갈 만큼 어렵다는 걸 모를 리가 없다. 그러나 마카오는 인생 한 방, 도박 한 방 줄타기에 대담한 모험을 거는 이들의 수혜를 받는 운과 기회의 땅인가.

가이드 말로는 마카오의 도박 시장은 작년 여름 내가 그곳에 갔을 시기에도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매출을 몇 배 훨씬 뛰어넘을 만큼의 고도성장으로 국민은 거의 세금을 내지 않는 특혜를 누리고 있다 한다. 오히려 한 가구당 일 년에 몇백만 원을 정부가 공짜로 나눠 준다 하니 현지 가이드인 한국인 총각이 연애 중인 마카오 처녀와 결혼을 꿈 꿀만도 했다.

실제로 마카오 카지노 딜러들은 급여를 일반 직장인보다 두 세배 많이 받는다고 한다. 흥미로운 사실은 마카오 국민만 딜러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주름이 자글자글한 소박함 그대로의 촌부, 뱃심 좋은 뚱뚱한 고모, 마음만 좋아 보이는 무덤덤한 표정의 이웃집 삼촌 같은 딜러들의 모습을 보아도 주민이 그들의 생활 터전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경이롭게도 중졸 이상의 학력만 되어도 웬만하면 취업할 수 있기에 실업자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한다. 문제는 젊은 사람들이 카지노 돈벌이만으로도 먹고살 만하다는 생각에 점점 머리 싸매고 어렵게 공부하며 대학까지 마쳐야 할 의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거다. 

한 나라의 미래를 보고 싶으면 그 나라의 젊은이를 보라 한다. 더는 꿈 꾸기를 멈추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마카오의 젊은이들이 이대로 늘어난다면 변수의 앞날이 걱정스럽긴 하다. 

실상은 카지노에서 일하면 돈 많이 벌 수 있어 좋을 것 같긴 하지만, 담배 연기로 몸 상하는 건 기본이고 마약과 술에 찌든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고역이라고 한다. 그래선지 딜러들은 손님이 테이블에 없으면 하나같이 초점을 잃은 채 멍해져 있고 이것이 폐해의 한 단면일 거다. 

해가 중천에 뜨고 마카오를 떠나던 날, 어젯밤 그리도 휘황찬란했던 도시 유혹의 불빛들은 어디로 갔는지 고요해진 대낮 풍경이 괜히 매정해 보였다. 

탐욕의 눈빛으로 도박하는 사람들을 끌어들여 돈을 버는 카지노는 결국 공허한 즐거움만 빼고는 무엇을 돌려줄 것인지. 어쩌다 운 좋은 복권 당첨자들이나 도박으로 돈을 딴 사람들이 결국 파멸하고 마는 건, 끝내 값지게 돈을 쓰지 않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유독 마카오의 카지노만을 두고 한 우려는 아니다. 어디서든지 ‘도박은 탐닉하기에 너무 독한 예술이다’란 누군가의 비유에 더 큰 공감을 한 장소였을 뿐이다. 

동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넘치도록 매력적인 마카오, 짧았지만 강렬했던 마카오 불야성의 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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