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비스는 상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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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 승인 2015.01.25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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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순 <문학평론가·수필가>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다. 오늘 난 친절을 담은 미소 띤 얼굴을 응대하고 온종일 마음이 환하다.

요즘 우리에게 가장 밀접한 거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무엇일까? 내게는 핸드폰이다. 내 마음과 생각을 민첩하게 타인에게 전달하는 심부름꾼이 바로 핸드폰이다. 가끔은 예상치 않은 일들을 물고 와 당황하게도 하지만 어쨌든 타자와 나와의 관계를 거리낌 없이 전달하는 매개체다. 친구이자 심부름꾼이었던 핸드폰이 기계에 대한 상식부족으로 말썽꾼이 됐다.

잘잘못을 떠나 전자제품이 제 구실을 못하니 전자회사와 통신사가 밉다. 적당한 시기가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으레 말썽을 부린다. 이틀 동안 기계를 만지면 만질수록 점점 꼬여만 가는 핸드폰을 탓했다. 도저히 참다못해 서비스센터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복을 입은 직원이 방긋 웃으며 친절하게 맞이한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다. 소파에 앉아 대기하고 있는데 음료수까지 대접한다. 내 순서가 되자 직원이 안내받아야 할 곳까지 데리고 가 의자에 앉힌다. 기계는 수리가 아닌 직원 손놀림 몇 번으로 제구실을 하게 됐다.

나는 전자회사와 통신사는 상술이 아주 뛰어난 좀도둑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이다. 특히 핸드폰은 일년만 지나면 배터리 충전 수명이 짧아지고 화면 속도가 풍 맞은 사람 같이 굼뜨는 일이 다반사다. 자칫 작동 한 번 잘못했다가는 기계가 사람 바보 만드는 것은 일도 아니다. 나름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은 감각을 가졌다고 장담하는 나도 헛갈리게 한다. 서비스를 받아 돌아 나오는 길 예전에 수모를 당했던 기억과는 달리 왠지 발걸음이 가볍다. 

별 부딪힘 없이 살아온 내게도 서비스에 대한 기억이 몇 있다. 내가 젊었을 때 친구랑 어느 옷가게에 들어가 구경하고 나오는데 주인이 눈을 흘기며 재수 없다며 돌아서 나오는 우리 뒤로 소금을 뿌렸다. 첫 손님의 마수로 그날 장사를 점치는 주인 입장은 이해하지만 주인의 행동에 우리는 참 황당했었다. 내 젊은 날에는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뜻밖에 서비스로 횡재한 일도 있다. 

김치냉장고가 처음 나왔을 때 김치냉장고를 들여놓은 친구나 이웃이 부러웠다. 얼마 후 나도 김치냉장고를 집에 모셔 놓고 행복해 했다. 일년 반이 지나자 아랫칸이 좀 이상해서 서비스센터에 문의해 서비스를 받았다. 직원이 나와 점검하더니 공장에서 작업 잘못으로 빚어진 일이니 회사 측에서 보상해 주겠단다. 조건은 환불과 새 제품으로 바꿔주는 것이었다. 나는 생각 끝에 환불을 받기로 했다. 

환불을 받고 김치냉장고를 살 때는 제품이 인기가 높아 전자회사간의 경쟁이 치열했다. 환불 받은 돈으로 같은 용량의 제품을 반값에 샀다. 새 제품도 사고, 돈도 챙기고 일석이조의 효과를 누렸다. 하지만 다음에 살 때는 좀 비싸더라도 종전회사의 제품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산 제품이 지금까지 이사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잘 돌아간다. 

자본주의가 정착하면서 우리의 생활 방식도 변했다. 이젠 6차 산업까지 부르짖고 있는 시점에서 서비스는 경제와 직결되는 시대에 도입했다. 과잉친절은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친절은 사람의 마음을 산다. 무형의 서비스가 소비자를 움직이는 시대, 기업은 이익창출에만 혈연이 될 게 아니라 소비자의 이익도 좀 챙겨주는 경영철학을 가진다면 어떨까. 우리 집 거실에 고장 난 벽걸이 티브이가 몇 달째 장식용으로 달려있는 것을 볼 때마다 새 것으로 살까, 서비스를 받을까 망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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