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선물
마지막 선물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4.11.27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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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햇살도 빛을 접어가는 늦가을과 초겨울이 공존하는 계절 11월의 끝자락이다. 마른가지에 매달려 있던 낙엽들이 바람에 우수수 떨어져 날린다. 의연히 제자리에서 몫을 다하고 홀연히 흙으로 되돌아가는 갈잎의 모습이 마치 인연이 다해 이승을 떠난 아버지를 닮았다. 잡을 수 없는 게 시간임을 알지만 각기 흩날리는 잎들은 깊은 울음을 터져 나오게 한다. 

흘러가는 시간의 등성이에 서서 계절을 보내곤 했다. 꽃도 보내고 마른풀도 보내고 나이가 무거워지면서 더러 친구도 보냈었다. 슬픔은 무엇을 잃어버렸을 때에 찾아오는가 보다. 아마도 마음을 다해 아끼고 사랑했던 그 무엇, 혹은 그 누구였을 것이다. 허나 아버지께서 떠나신 지금, 그동안 내가 겪었던 슬픔은 슬픔도 아니었다.

꽃이 지천으로 피던 봄날, 건강하던 아버지께서 췌장암 선고를 받으셨다. 유한한 삶의 시간은 5개월에서 10개월이었다. 청천벽력이란 말이 실감났다. 그저 대책 없이 울음만 터지는 나에게 오히려 동생들이 다독였다. 어찌할 것인가. 아버지를 모시고 청주에서 서울로 오르내렸지만 별다른 수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동안 몇 날을 자식들이 모여 궁리해도 쉽사리 수술을 할 것인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결국 예사로 넘길 병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신 아버지께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리셨다. 절대로 수술은 하지 않는다고, 만약에 의식을 잃고 쓰러진다 해도 인공호흡기도 달지 말고 영양제도 놓지 마라신다. 집에서 모든 것 정리하고 조용히 살다 가겠노라 하셨다. 어쩔 수 없이 삶의 끈을 놓아야 하는 아버지와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많이 울었다.

아버지는 기력이 남아 있을 때까지 농사일을 하셨다. 감자를 수확한 자리에 콩을 심고 깨를 심고 김장 무를 심었다. 마지막까지 자식들에게 주려고만 하시는 마음이 눈물겨웠다. 씨만 뿌리고 가꿀 수 없게 되자 휴일마다 동생내외가 거들었다. 거동이 불편해 주로 누워계시는 마지막 한달 동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은 깨끗이 정리해 사후에 처리해야 할 일이 없게 했다. 

사그라지는 삶조차 어찌그리 깔끔하신지 자식들 고생한다고 마른 풀처럼 쇠잔해진 기력으로 자식어깨에 팔을 얹고 화장실을 향하던 강한 의지는 이브자리 한 번 더럽히질 않으셨다. 그런 아버지가 이승을 떠나기 전날까지 어머니는 아버지와 손을 꼭 잡고 주무시며 긴 이별을 준비하셨다.

준비된 이별이라 할지라도 상실감에 대한 경구는 상실을 겪어야 비로소 절절하다. 이별을 읊는 유행가 가사조차 손톱에 박힌 유리조각처럼 아프다. 아버지의 부재처럼 압도적인 상실은 아픔이란 단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죽음의 충격은 가족들의 마음에 낙진으로 내려앉을 뿐이다.

아버지가 떠나신 후 나는 그 많은 무를 뽑아 무청하나 남기지 않고 집으로 가져왔다. 무김치를 담고 동치미를 담고 무청은 시래기로 말리는 중이다. 동생들에게 아버지의 마지막 선물이라며 골고루 나눠줄 것이다. 수확한 콩도 삶아 메주를 띄워 내년 봄 된장을 담가 익으면 그 또한 소중한 선물로 나눠주리라. 아버지는 우리에게 재물을 남겨 서로 어색하게 만들지 않고 따뜻한 정만 듬뿍 남겨주고 가셨다. 그래서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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