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발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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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10.17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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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아이들
류 현 숙 <교동초 교사>

높고 푸른 가을 하늘아래 운동장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한없이 즐거워지고 행복해진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늘 즐겁고 행복하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교사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행동과 생각으로 칭찬받는 아이가 있는 반면, 하는 일마다 말썽을 부려 걱정을 하게 만드는 아이도 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경태라는 아이도 약방의 감초처럼 안 끼는데 없이 끼어 마음을 상하게 하고 속을 썩였던 아이였다. 한 학년을 마치고 늘 그렇듯 한 해 동안 정들었던 아이들과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래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보내려는데, 경태가 다가오더니 무엇인가를 내밀었다.

"선생님!"

"왜"

"이거……."

쑥스러워하며 경태가 내민 것은 손때가 묻은 노트 한 권이었다.

"무슨 노트야"

제법 진지한 경태의 모습이 뜻밖이기도 하고, 무슨 내용이 담겨있을까 궁금하기도 하여 얼른 첫 장을 펼쳐 보았다.

노트에는 내가 틈틈이 아이들에게 훗날 교훈으로 삼고 살아가라고 칠판에 써 주던 동서고금의 명언들이 날짜와 함께 깨알 같은 글씨로 써져 있었고, 어떤 글귀 아래에는 색연필로 밑줄까지 그어져 있었다.

수업시간에 동기유발을 위하여 명언을 한 가지씩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함께 낭독을 하기도 하고, 뜻풀이를 해 주기도 했던 기억이 새로웠다.

일 년 동안 반에서 가장 말썽피우고 공부도 가장 뒤처져서 걱정을 많이 듣던 경태.

노트의 마지막 장에는 '선생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바르게 열심히 살겠습니다' 라는 자신의 다짐까지 쓰여 있었다.

순간 난 가슴이 철렁하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떨리는 손으로 그 녀석의 손을 덥석 잡았다.

"아니 너!"

나는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한 채, 반 아이들이 보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왈칵 쏟아지는 눈물을 그대로 흘려야만 했다. 가슴 가득히 따뜻한 기운이 감돌며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값진 보물을 얻었다는 생각뿐이었다. 간신히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경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너 대단한 아이구나 내가 부족해서 너의 능력을 몰라봤어!"

순간 나는 참으로 좁은 내 자신의 안목을 탓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판에 박힌 고정관념 속에서 아이들의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꿰뚫어 보지 못하고 성적이나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성격만으로 아이들을 평가해 온 나의 지도방식을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간신히 떨리는 목소리로 그러나 신념에 차서 경태에게 말해 주었다.

"넌, 틀림없이 제 몫을 잘 해내는 멋진 사나이가 될 거야. 힘내렴. 약속할 수 있지"

경태도 약속한다는 듯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우리는 마주보고 빙그레 웃으며 아쉽게 이별을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단순히 지식의 전달자 역할만 할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개개인의 특성에 맞는 맞춤식 교육을 하여 아동의 몸과 마음의 상태까지도 파악하여 지도하려 애쓴다.

지금 내 눈앞에서 재잘거리며 뛰노는 어린 새싹들을 무한한 신뢰의 눈길로 바라보면서 오늘도 많은 경태를 찾으려 노력하는 중이다. 지금쯤 경태가 이 땅의 성실한 젊은 일꾼으로 당당히 살아가리라 믿으며 재회의 날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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