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
수박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4.08.03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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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평소 마음의 잣대를 쓰지 않으려고 애쓴다. 주관적인 사고를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러나 때론 마음의 잣대가 정확한 경우가 있다. 그 잣대가 수박을 고를 때는 잘 들어맞는다. 수박은 두들겨 소리로 과육의 상태를 판단하는 유일한 먹거리다. 주먹으로 가볍게 두들겨 봐서 소리가 맑으면 속이 잘 익은 수박이다. 그리고 겉면의 녹색 줄이 유난히 짙으면 잘 익었다. 꼭지에 매달린 줄기가 시들지 않았으면 밭에서 수확한 지 얼마 안 되는 수박이다. 그러나 지옥 염천 땐 냉장 보관이 안 되면 예외일 수가 있다.

이렇게 수박 고르는 일을 두고 마음의 잣대 운운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손으로 두들겨 보고, 만져도 보고 흡사 의사가 청진기로 환자를 진찰하듯 해 보지만 속을 확인하는 일은 결국 칼로 수박을 쩍 갈라보기 전엔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푸른빛의 껍질과는 달리 속이 빨간 수박을 표리가 부동한 인간과 비유를 해본다. 수박과 마찬가지로 한 길 사람의 속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색깔도 향기도 무게도 없는 인간의 마음은 참으로 복잡하여 그 밑바닥을 알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움을 우리는 경험으로 체험했다. 특히 여인의 마음은 더더욱 미묘하여 종잡을 수가 없단다. 이런 여인의 마음을 선조는 소인배에 빗대기도 했다.

어느 여인의 경우다. 십수 년 넘게 쌓아온 우정이 저쪽의 배신으로 서운함을 앓다가 대인 기피증까지 걸렸다며 하소연을 해왔다. 인간의 정이란 소 심줄처럼 질기다고 했다. 그러나 남남끼리 만나 긴 세월 우정을 이어가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이는 서로간의 깊은 신뢰와 정을 섞지 않으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정은 꽃을 가꾸듯 가꿔야 한다. 양쪽이 그렇게 가꾸어야 한다. 우정의 꽃은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바탕에 깔려야 피어난다. 죽고 못 살던 두 사람의 관계가 무너진 동기는 상대방의 가면 때문이라고 했다. 앞에서는 친한 척하면서 뒤돌아서서는 헐뜯고 모함하기를 십수 년, 그것을 까마득 몰랐다고 하였다. 신의를 저버린 상대방이었다. 진정성을 가면으로 가리고 얼굴에 웃음을 짓는 교활함이었다. 진정으로 다정한 친구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충실한 사람이다.

친구의 배신으로 마음 아파할 여인에게 노래 한 곡을 선물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가 그것이다.

‘강물 같은 노래를 품고 사는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내내 어두웠던 산들이 저녁이 되면 왜 강으로 스미어/ 꿈을 꾸다 밤이 깊을수록 말없이 서로를 쓰다듬으며/ 부둥켜안은 채 느긋하게 정들어 가는지를 으음-음-- / 지독한 외로움에 쩔쩔매본 사람은 알게 되지 음 알게 되지/ 그 슬픔에 굴하지 않고 비켜서지 않으며/ 어느결에 반짝이는 꽃눈을 닫고/ 우렁우렁 잎들을 키우는 사랑이야말로/ 짙푸른 숲이 되고 산이 되어 메아리로 남는다는 것을…’(생략)

유행가 가사는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시로 남기도 한다. 드높은 준령의 산들도 밤이 되면 그 넓은 품을 흐르는 강에 풀어놓고 그 강물 속으로 녹아들 듯, 가면일랑 벗어던지고 오늘이라도 주위 사람들에게 진정성 있는 심연의 속살을 드러내 보자.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그 말에 공감하는 친구라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대인기피증이라는 병은 사람을 만나야 치유된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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