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영섭의 ‘산에서 사노라네’
엄영섭의 ‘산에서 사노라네’
  • 정인영 <사진가>
  • 승인 2014.07.14 1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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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인영 <사진가>

당신 그리워 또 당신께로 갑니다./ 나무들 바위들 사이사이 수풀 헤치며 숨찬 줄 모르고 오릅니다./엄마 품에 안긴 어리광 철부지가 되어 오늘도 저는 셔터를 누릅니다. 당신과 온전한 하나 되어….
 
산악 사진가 엄영섭은 세상을 품은 높은 산을 어머니라 하였다. 그 어머니를 만나러 산에 올라 필름에 담아온 30여 년의 흔적들을 엄 작가는 책으로 펴냈다.

너나없이 비슷비슷한 산 사진이 아닌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과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하게 산을 보여주는 것에서 벗어나 엄 작가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명산 풍경에 문학적 향기를 듬뿍 담아 한 권의 시 사진집을 멋스럽게 펼쳐보였다.

지리산 연하봉에서 본 철쭉에서 ‘아기 산신령을 만난 듯했다’고 했던가. “지리산 봉과 골에 봄기운 젖어드니 어린 호랑이들 나란히 산책 나왔네. 아랫녘 사람들 살아가는 모습도 살필 겸 산책 나온 뱀사골에서의 계곡”을 작가는 ‘미련’으로 보았다. 하늘과 땅을 휘덮어 피던 젊음의 열정. 해가 가고, 달이 가 흔적으로 옥구슬이 구르는데 아직도 못다 한 마음 더 남았는가. 가만히 흐르는 계곡물이 사진에 박혀있다.

덕유산정에서 밝아오는 여명 아래 곱게 물든 잔나무들을 ‘선녀놀이터’라 하였다. “층계층계 비단 층계, 푹신푹신 열두마당, 예쁘고 귀여운 아기 선녀들, 꿈처럼 천진스레 놀러 오겠네.”라고 노래한다.

그는 또 운산에서 대덕산 쪽으로 가다 만난 운해를 ‘쾌주’라 하였다. 땅엔들 하늘엔들 거칠 것 있으랴. 임 그리워 가는 길 칠흑을 하얗게 가르는 아름다운 저 열정을 소나무는 알고 있다고 했다.

부귀산 투구봉에서 만난 아침 일출을 ‘열리는 문’이라 적었다. 입술 붉게 힘겨웠던 일들, 세월의 물살이 말끔히 씻어간 뒤 어둠이 걷히고 새로운 문이 열리고 있다. 아름다운 곳, 곱고 아늑한 세계를 향해.

선운산 계곡물에 내려앉아 펼쳐진 단풍잎들은 ‘추경’이라 하였다. 물도 제 흐름 멈추고 넋 잃고 보고 있다. 지리산 제석단에서 찍은 눈꽃은 ‘설화’라 지었다. 봄꽃, 여름 녹음, 가을 단풍 뽐내지 마라. 갈고 씻고 닦은 마음 한겨울에 피워낸 이런 흰 꽃도 있느냐.

85점의 사진에는 작가가 느낀 감성을 잔잔하게 표현했다. 그래서 책을 보면 산은 그대로의 것이 아닌 사람이 느낄 수 있는 마음을 오감으로 엿볼 수 있어 좋다.

사진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한다. 무엇이 어떻게 더 가치 있고 예술적이냐 하는 것은 시대에 따라 함께 변한다. 지금 사진은 단순히 찍는 것이라 말해주는 단계에 와 있다. 디지털 시대라 하여 아무나 쉽게 찍어 작품으로 내놓는 시대는 지났다. 한 장의 사진을 보고,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다.

오늘날 기계적 수단으로 피사체를 담은 사진 작업보다는 전통적인 방법으로 찍은 사진이 더 감동적이다. 여기에 사진에 글을 짓는 것은 이제까지의 사진 작업에서 앞서가는 예술 활동이라 하겠다. 사진가는 눈앞에 있는 장면을 단순하게 보지 말고 온몸의 감각기관을 총동원해 대상에 쏟아 부어야 한다.

엄영섭의 사진 작품이 뛰어나게 다가오는 것은 산 풍경을 은유적으로 드러내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산은 같아도 그의 또 다른 시각으로 특별한 산의 모습을 이루어 내는 것이다.

그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 더 먼 산을 보네. 그립던 임 온다 한들 반가움 이보다 더할 손가. 산이 좋네 산이 좋아 참으로 산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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