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 가시
치명적 가시
  • 김혜식(수필가)
  • 승인 2014.07.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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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식의 가요따라 세태따라
김혜식(수필가)

칸나에 매료되어 꽃 앞에 서서 한동안 넋을 잃었던 적이 있다. 칸나의 붉은 꽃잎이 참으로 좋았다. 나는 원색을 좋아한다. 언제부터인지 모른다. 처녀 땐 연보라색과, 회색, 그리고 아이보리색을 좋아했었다. 그래 의상도 주로 그런 색을 입었었고, 화장할 때 루주도 바른 듯 만 듯, 연한 분홍색을 입술에 칠했었다.

나이 탓인가 보다. 요즘은 그런 색의 루주를 바르면 꼭 환자처럼 얼굴이 창백해 보여 싫다. 필경 늙음에 대한 저항이 아닌가 싶다. 더 보탠다면 생기가 없어 보여 연한 색의 루주가 싫은지도 모른다.

여인들의 루주 색을 보면 경제가 보인다고 했다. 나라가 불경기 때는 입술색이 붉어진단다. 요즘 거리에 나서면 농염하리만치 새빨간 루주를 바른 여인들이 눈에 띈다. 나 또한 빨강색의 루주를 자주 바른다.

경제 이야기를 꺼내노라니 생각나는 여인이 있다. 그녀도 나처럼 새빨간 루주를 좋아했다. 화려한 입술색깔만큼 평소 옷차림도 매우 화사했다. 그래서 그녀의 별명이 ‘장미’다. 그럴 뿐만 아니라 사람을 만나면 밥도 잘산다. 한 잔이 밥 한 끼 값에 버금가는 커피를 짐짓 커피숍에 가서 내게 사주기도 했다.

하루는 그녀에게 식사 대접을 하기 위해 시내 음식점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그녀의 음성이 전과 아주 달랐다.

사연을 풀어놓으면 이렇다. 그땐 둔해서 눈치를 채지 못했다. 나는 소박한 밥상이 좋아 보리밥집에서 그녀를 만나자고 했었다. 그 보리밥집 시래기 된장국이 일품이다. 보리밥집에서 그녀는 보리밥을 앞에 놓고, 젓가락으로 밥알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날은 그녀가 입맛이 없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었다.

이후 한동안 못 만났다. 그녀의 근황을 바람이 실어다 주었다. 갑자기 빈 털털이가 되어서 남쪽 바닷가 어느 곳으로 빚쟁이들을 피해 내려갔다고 한다. 솔직히 난 그녀가 집안 형편이 풍족한 줄 알았다. 그녀는 늘 지갑이 두툼했다. 평소 씀씀이가 여유로웠다. 뿐만 아니라 배기량 큰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녔다. 그러나 그녀가 그동안 남 앞에 보여준 모습이 실은 전부 허세였던 것이다. ‘장미’의 별명을 가진 가련한 이 여인에게 ‘그대 모습은 장미’의 노래를 바친다.



‘장미꽃 한 송이/ 그대의 옷깃에 꽂아 주면/ 너무나 어울려/ 눈이 부셔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 장미꽃 한 송이/ 살며시 손으로 만져보면/너무나 따가워/ 눈이 부신 장미는 그대 모습인가/ 멀리에서 보면 다정하지만/ 다가서면 외롭게 해’(생략)



그녀를 떠올리려니 어느 종교 단체 뒤뜰에 있는 장미 나무가 문득 생각난다. 낭설인지 모르겠다. 아니 근엄하고 위엄 있는 구도자들이 ‘설마 그럴까?’ 반신반의해 볼 일이기도 하다. 오래전엔 그 장미 나무는 꽃잎보다 꽃 가시가 값나갔다고 한다. 꽃이 만발하고 가시의 모양새가 투사의 창처럼 날이 서는 계절이 오면 가시가 많은 가지부터 수난을 겪는단다. 그것은 구도자들이 그렇게 수난을 준다고 한다. 꽃 가시 끝에 피가 묻은 채 아침이면 뒤뜰에 버려진다고 하니, 이성에 대한 욕망은 종교의 그것보다 강한 모양이다.

구도자가 욕망을 잠재우기 위해서 장미가시로 등줄기를 찔렀듯이, 장미와 같은 화려함과 허세의 유혹에서 벗어나기 위해 차라리 그녀 또한 속세를 떠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빛 좋은 개살구’란 말이 있다. 빛 좋은 장미에 취해 한 번 찔리면 인생에 있어서 치명적인 가시가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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