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여덟, 어지럽지도 복잡하지도 않게
쉰여덟, 어지럽지도 복잡하지도 않게
  •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 승인 2014.06.18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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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종의 함께 읽는 도덕경-땅에서 듣는 하늘의 노래
김태종 <삶터교회목사·생태교육연구소 터 소장>

以正治國(이정치국)이요 以奇用兵(이기용병)이며 以無事取天下(이무사취천하)니라.

吾何以知其然哉(오하이지기연재)인가 以次(이차)니라.

天下(천하)에 多忌諱(다기휘)면 而民彌貧(이민미빈)하고 民多利器(민다리기)면 國家滋昏(국가자혼)하며 人多伎巧(인다기교)면 奇物滋起(기물자기)하고 法令滋彰(법령자창)하면 盜賊多有(도적다유)리니 故(고)로 聖人(성인)이 云(운)하기를 我無爲(아무위)면 而民自化(이민자화)하고 我好靜(아호정)이면 而民自正(이민자정)할 것이며 我無事(아무사)면 而民自富(이민자부)하고 我無欲(아무욕)이면 而民自樸(이민자박)할 것이라.



- 올바름으로 나라를 돌보고 술수로 군사를 쓰며 일없음으로 천하를 얻는다. 내가 어찌 그러한 줄을 알겠는가, 이로써다. 세상에 속이고 꺼리게 하는 것이 많으면 사람들이 그만큼 가난하게 되고, 사람들이 문명을 많이 누리면 나라는 더욱 어지러워질 것이며, 잔재주 부리는 사람이 많으면 심란한 물건이 넘쳐나고 법령이 복잡해지면 도적도 그만큼 많아지는 법, 그러므로 옛 스승이 이르기를 내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저절로 자신을 갖추게 되고, 내가 맑아지면 사람들이 절로 올바르게 살 것이며 내가 일없음으로 살아가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부유해지고, 내가 욕심을 내려놓으면 사람들은 그들 자신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지금 앞에 놓고 있는 도덕경은 왕필이 쓰고 임채우가 옮긴 ‘왕필의 노자주’입니다. 거기 보면 심각한 오역(誤譯)이 보이는데 첫 줄의 以正治國(이정치국)이요 以奇用兵(이기용병)을 ‘바름으로 나라를 다스리려고 하면 속임수로 군사를 동원하게 된다’고 한 것입니다. 바른 번역이라고 하는 것이 있을 수 있는지는 여전히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이 구절은 ‘정(正)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기(奇)로써 군사를 쓴다’고 하는 것이 기본 번역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하의 이야기는 나라를 다스리고 군사를 쓰며 천하를 얻는 방법과는 영 어긋난 졸렬하고 유치한 정치적 · 문화적 술수의 폐단에 대해 주욱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삶과 세상을 복잡하고 어지럽게 하는 것은 그로 인해 챙길 놈들은 챙기고, 억울하게 빼앗기는 이들이 생겨나는데, 몹쓸 정치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물론 그렇게 복잡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정치적 술수들은 언뜻 보기에는 말이 화려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홀릴 만한 수많은 정책들을 제시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것이고, 이렇게 하면 앞날에 먹구름 끼는 일은 없을 것이니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고 잘 살 수 있다고 하는 갖가지 현혹하는 언어들이 난무하게 되는 겁니다.

‘잘 살게 해 주겠다’느니 ‘행복하게 해 주겠다’느니 하는 정치꾼들의 말은 모두가 거짓말입니다. 정치는 결코 사람을 행복하게도, 잘 살게도 할 수 없습니다. 잘 사는 것이나 행복하게 하는 것은 모두 본인들이 엮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 정치란 그런 조건을 갖추는 것이고, 그리하여 백성들의 삶의 지수(指數)가 정치의 성패를 결정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 두지 않으면, 우리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에 속고 또 속을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문제를 간결하고 명료하게 만들기, 그거야말로 해법의 궁극적 열쇠라는 것, 그 열쇠는 모두 개인들이 쥐고 있다는 것, 혼란과 고통, 그리고 비극으로부터 벗어나는 길목이 바로 거기라는 사실, 그것이 바로 오늘 가르침이 말하고 있는 正(정:올바름)의 논리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 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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