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술 외상술이 최고라지만
공짜술 외상술이 최고라지만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4.03.03 2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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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사무실 벽에 매달린 시계의 시침과 분침이 어느덧 퇴근시간을 알리는 오후 6시, 아라비아 숫자 1자로 보기 좋게 쭉 뻗는다. 동시에 약속이라도한 듯 책상 앞의 전화통이 요란스럽게 울린다.

“어이, 아우님인가? 나여, 형님일세. 끝나고 바로 ‘실비곱창집’으로 오게.”

“뭐, 뭐여 아예 일방적이군. 그리고 형님이 뭐여. 뭐 좋은 일이라도 있나?”

“히히잇 히히잇 서울에서 술값이 왔지비.”

녀석(아동문학작가)의 특유한 웃음소리를 끝으로 전화는 일방적으로 끊겼다. 퇴근길에 술 생각이 나서 이쪽에서 불러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녀석이 먼저 불러내기가 일쑤다. 그리고 약속은 거의 알방적이고 명령조인데다 듣기싫은 웃음소리를 끝으로 전화는 끊긴다. 물론 나도 오늘쯤 녀석의 전화가 없었을지라도 누구의 허리띠를 잡고서라도 술타령을 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퇴근시간만 되면 뱃속이 출출하니 매일 술 생각이 난다. 이럴 때마다 술에 관한 한 마음이 약해져 주님 바커스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약하디 약한 위와 간에 웬간히도 술을 부어넣고 밤 늦게서야 어슬렁 어슬렁 집으로 향한다.

녀석의 명령처럼 퇴근 직후 실비곱창집으로 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녀석은 벌써 시켜놓고 술을 마셨는지 곱창찌개가 끓고 있고 소주 반 병이 비어 있었다.

“히히잇 히히잇 어서 오게나. 아우님 앉아서 한 잔 받게나.”

“어디서 술값을 삥쳤나. 어떤 작자가 또 자네 주머니 빈 것을 알고 용케도 배터리 충전해 주었군.”

"웃기지 마라. 자그만치 십만원이다. 이 돈이면 우리 둘이 절약하면 한 댓세는 출출한 속을 달랠 걸세 알았지비. 아우님!"

구레나룻과 턱수염 등 온통 털이 많이 난 녀석은 늘 형님, 아우를 따지자면서 넘어간 이마하고 털로 하잔다. 이럴 때마다 난 두 손을 들고 만다. 또한 나 못지 않은 술꾼이라 여러 가지로 못 말리는 녀석이다.

그러나 난 그 녀석이 좋다. 이곳 지방도시에서 글을 쓰는 갑장으로써 문학성도 비슷해 녀석하고는 죽기 살기로 잘 지낸다. 둘이는 이 시대의 오만상을 쓰디쓴 소주에 담아 울분을 삭히며 거푸거푸 마시기 시작했다. 생떽쥐베리의 인간의 대지와 예이츠의 이니스프리섬에도 가보았고, 까뮈의 페스트와 보나르의 문학성도 얘기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 한쪽 구석엔 2홉짜리 소주 빈병이 십여 개 뒹굴었다. 녀석의 공짜술만 어찌 얻어먹냐며, 이번엔 나의 외상술을 먹어보자며 가끔 외상하는 양주, 맥주집 <카사노바>를 향해 비틀거리며 앞장 섰다.

가장이 이처럼 술에 취해 만신창이가 되어 들어오니 착하고 마음 약한 아내가 눈물로 뒤범벅됐다.

다음날 가족의 빵 해결을 위해서 깨진 얼굴로 아내한테 겸연쩍어 하며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해서 얼마 있다가 녀석한테서 징글맞은 웃음소리가 섞여 전화가 왔다.

“히히잇 히히잇. 아우님 엊저녁 잘 들어갔나?”

“말도 말게 이 사람아.”

“나도 얼굴이 왕창 깨져 아예 코가 없을 지경이라네.”

“뭐야, 얼마나 다쳤는데 그래?”

“공짜술 외상술이 최고라지만 별것 아니더구만. 오늘 저녁 집에 가서 코 없는 얼굴이란 시나 쓰시게나 아우님! 히히잇 히히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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