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취의 시골장날 막걸리
정취의 시골장날 막걸리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4.02.10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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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홍덕리 박씨, 장에 나왔나. 워티게 볍씨 담그었남?”

“어이그, 오랜만여유. 남산굴 정자나무댁. 참, 지난 봄 가져가 암소 송아지 낳았남유?”

“얼래, 성(城)너머 사돈 양반 장에 나왔시유. 그간 댁내는 안녕허시남유?”

“어! 계룡골 친구 장에 나왔남? 그 호미자루 워디서 맞췄어? 나도 이모주 쇠스랑 무디어서 잘 허는 대장간을 가서 달여야 겠는디 말이여.”

“어이구, 붓당굴 만식이 오랜만이여. 집안은 무고 하신감? 이리 와. 막걸리나 한 잔 험세이.”

중천에 뜬 햇살이 장터 차양막을 뚫고 따사로이 골목골목을 누비는 점심나절의 시골 장날의 모습이다. 절기에 따라 바쁜 농사일을 하면서도 농기구 살 일이나 일용품 구입할 일이 있을 때는 달력에 장날을 표시해 놓았다 장보러 간다. 너도 나도 지게를 지고 보따리 하나씩을 이고 산고개를 넘고 들길을 따라 개울가 징검다리를 조심히 건너 읍내 장보러 간다. 

시골의 많은 사람들로 붐비는 저자거리. 싸전, 포목전, 옹기전, 돼지전, 채소전, 생선전, 국말이전이 빽빽이 들어서고 곳곳에서 오가는 사람마다 아는 이들끼리 손을 잡고 그동안의 안부를 묻는다. 농상얘기, 대처로 나간 자식들 얘기, 동네 어르신네와 친척들의 근황과 안부를 묻는 장날은 금새 이 지역민들의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흐뭇한 장소로 바뀐다. 

이렇게 인사를 나누는 끝에는 대개가 가까운 국말이집이나 주막집으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소매자락을 잡아 끈다. 그리고는 앞치마 두른 텁텁한 주모가 내주는 큰 사발에 막걸리를 찰찰 넘치게 부어 마시고는 입술을 훔치며 서로 먼저 받으라며 권주한다. 큼직한 사발로 벌컥벌컥 목을 축이며 마시는 우리 농군들의 호방한 멋과 시원한 맛이 이 자리에 있다. 여느 도회지의 주석처럼 흉도 없고 셈도 없이 훈훈한 인정과 풋풋한 인간애가 꿀처럼 흐르는 흐뭇한 좌석이다. 그러면서 올해 농사는 풍년이 되어야 한다는 얘기, 이웃 마을 과수원집 며느리 혼수얘기도 나온다.

장터 곳곳에선 장돌뱅이 특유의 구수하고 요란한 호객으로 장날의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사람들은 저마다 골목을 기웃거리며 장을 보느라고 이마에 땅방울이 맺힌다.

중천에 있던 해가 짐짓 서편으로 기울면 많은 사람들로 왁자지껄 붐비던 장터는 오후 파장으로 흥청대며 흐느적거린다. 싼거리 떨이를 외치는 생선전 아줌마 소리, 나뭇짐 팔려는 사람들의 외침으로 장터는 더욱 쓸쓸해져 간다.

지게다리목에 생선꼬리를 사서 매달고 주막집 기웃거리는 고살매 딸기코 이 서방, 경운기 짐칸에 송아지 줄 사료 몇 부대 실어 놓고는 국말이집을 기웃거리는 최씨의 검으테테한 양 볼이 제법 불그스레하다. 제법 숫기를 꽤 뿌리는 이장집 큰아들 홍수는 주막집 작부에서 술잔을 기울이자 앞에서 같이 대작을 하던 장항의 농사꾼 똥갑이는 작부의 풍만한 몸매에 눈이 휘둥드레진다.

“아이구. 웬 그리 몸이 좋디여!”

쩡 마르고 멋없이 나이만 먹은 아내만 보다가 작부의 풍만한 몸매에 순진한 이 농사꾼은 혀를 내밀며 침을 꿀꺽 삼킨다.

이제 장터의 땅거미가 기웃거리고 천막 말뚝의 그림자가 길게 뉘인다. 장돌뱅이들도 오늘 재미를 보았는지 장타령 가락에 흥에 겨워 장단을 맞추며 짐을 꾸리고 장옥들도 문을 서둘러 닫는다.

모처럼 장날에 반가운 사람들과 여러 순배의 막걸리를 들이킨 지라 곳곳에서 장터를 빠져 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비척거린다. 더러 돼지전 골목이나 주막집 옆 기둥에 기댄 채 술에 취해 코고는 샌님들도 한 둘 보인다.

점점 어둠은 밀려오고 왁자지껄 장꾼들로 붐볐던 장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지저분한 쓰레기만 귀퉁이에 쌓인 채 검푸른 밤하늘로 덮혀 간다.

다만, 채소전 그 어딘가에 있는 국말이집 강아지가 이 까아만 어둠의 정적을 가르며 끄으응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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