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겨울바다 정취와 술맛
그 겨울바다 정취와 술맛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4.02.0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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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겨울이면 으레 <겨울바다 行> 채비를 한다. 아마도 해신(海神) 포세이돈의 손짓을 거부할 힘이 없는 것 같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좋아라하면서 겨울바다를 찾는다. 간혹 텔레비전에서 야외 촬영으로 강이나 바다를 배경으로한 드라마라도 나오면 가슴이 두근두근 거린다. 마음 같아선 그저 간단한 채비로 그냥 뛰쳐나갔으면 하고 동요한다. 이런 나를 보고 아내는 이렇게 빈정댄다.

“참! 어리군요. 자식 셋이나 둔 가장이 그래, 십 팔 세 청춘으로 돌아가려우?”

그러나 겨울 바다가 좋은 것을 어찌하랴. 인적이 끊기고 허름한 상가가 고즈넉하게 늘어서 있는 을씨년스럽고 한적한 겨울 바다, 흰 조약돌과 모래가 보?맑!構� 누워 있고 푸르른 수평선 위로는 흰눈이 수면 위에 마구 떨어져 숨는 그 곳. 아무도 없는 썰렁한 생선횟집에서 뎅그라니 앉아 창너머로 푸르게 넘실대는 바다를 보며 아나고, 오이, 당근을 보쌈하여 목구멍이 톡 쏘는 소주와 함께 먹을 수 있는 그 곳. 생각만해도 설레고 마냥 가슴이 뛴다.

울창한 숲, 송림의 허리를 한참 돌다보면 넓고 검푸른 바다가 한눈에 들어와 보는 사람 누구라도, 아! 하고 저절로 탄성이 나오리라. 서로 부둥켜 안는 파도 사이 사이로 작은 섬들이 점을 이룬다. 저만치 아스라이 수평선엔 고깃배가 통통거리며 힘찬 삶을 띄우고 있고, 그 위로 갈매기 떼 끼르륵-끼르륵-자형(字型)을 이루며 돛대 위를 난다.

조개껍질과 흰 조약돌은 파도에 씻어내고 아장거리는 모래벌을 혼자 걸어본다. 더러는 비릿한 생선 내음이 후각을 스치고, 더러는 눈 끝이 매운 냄새가 몸에 밴다.

지난 여름내내 젊은 연인들이 낭만과 사랑, 팽팽한 유희를 구가했던 아름다운 밀어들이 보송보송한 흰 모래에 묻혀 다음 여름을 준비한다. 통기타에 냄비 뒤집어 놓고 두둘겨 퍼지는 강렬한 금속성 소리에, 작열하던 한여름 햇빛에 그을린 건장하고 풍만한 몸뚱이를 미치도록 흔들어대었던 젊음의 초상들이 묻혀, 다음 해의 건강한 여름을 기약한다. 이처럼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조용히 접어보고 생각할 수 있는 적막한 정취의 겨울바다.

누군가 말 했던가. <겨울 바다를 보지 않고 여름 바다를 운운 말라!>

여름 바다가 힘 솟는 20대라면 겨울 바다는 30대의 완숙한 사색의 샘이다. 그렇게 혼자서 백사장을 거닐다가는 약간의 추위가 느껴지면 가까운 생선횟집으로 발걸음을 옮겨 놓는다. 아나고, 우럭, 낙지, 도미 등이 유리 수족관 속에서 퍼덕이며 노니는 것을 보며,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창가 쪽으로 앉는다. 창 밖으로 탁트인 겨울 바다의 정취에 젖어 도취하노라면 푸짐한 생선회가 나온다.

둥그렇게 넓은 접시 위에 싱긋한 상추, 당근, 오이로 예쁘게 모양을 하고 그 위에 가지런히 놓여진 사시미를 보는 순간 울컥 술맛이 솟는다. 목구멍을 콱 쏘는 소주 한 잔을 가득 부어놓고 상추에다 마늘, 사시미, 고추, 오이, 겨자를 놓고 보쌈하여 입을 크게 벌려 넣는다. 그러자 눈물이 핑 돌고 코끝이 찡하며 아찔하다. 오호라! 눈물을 찔끔거리며 울며 겨자 먹는 게 진짜 겨자가 아니라던가. 아! 왜 이리 술맛이 좋다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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