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75>
궁보무사 <175>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2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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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지독한 것! 세상에 그런 변태가!"
6. 가경 처녀

곧이어 짐승 털가죽에 똑같이 휘감긴 놈이 또다시 동굴 밖으로 공처럼 굴러 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그 놈 역시 가까운 나무뿌리에 채여 멈춰지자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한 채 신음을 마구 토해내며 쩔쩔 맸다.

"아니, 이게 도대체 어찌된 거야"

내덕과 사천이 미처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동굴 안으로 뛰어들어갔던 부하들이 하나 둘씩 짐승 털가죽에 감싸여진 채 공처럼 모두 굴러 나왔다.

"그, 그럼. 자그마치 여섯 명씩이나 되는 젊은 장정놈들이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가 그 처녀한테 이런 방식으로 모두 똑같이 당했다는 말인가"

사천과 내덕은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 듯 입을 딱 벌리며 서로 마주 쳐다보았다.

"생긴 것과는 영 다르게 아주 빠르고 힘이 센 계집이었어요. 불빛이라곤 하나도 없는 깜깜한 동굴 안으로 무작정 뛰어 들어온 우리들이 잠시 머뭇거리고 있을 때 한 사람 한 사람씩 잡아다가 별안간 머리를 지져 누르고 두 발목을 잡아 허리를 바짝 오므려서 뭔가를 뒤집어씌우더니 이렇게 공처럼 밖으로 굴려버리더라구요."

맨 처음 밖으로 굴러 나왔던 부하 녀석이 자기 딴엔 몹시도 분하고 원통한 듯 땅바닥에 침을 칵칵 뱉어가며 소리쳤다.

"게다가 저 요망한 계집이 내 그 곳에 손을 바짝 들이밀어 넣어가지고 털 한 오라기를 인정사정없이 그냥 확 잡아 뜯어내지 않겠어요 나 원 창피해서."

그들 중 어느 누가 이렇게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뭐 뭐라고 내, 내 것도 뽑혔는데"

"나도!"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것 같네. 어쩐지 아까 그곳이 별안간 따끔하더라니!"

"그러면. 아까 그 계집이 우리의 그것 한 오라기씩 골고루 뽑아냈단 말이야"

"우와! 지독한 것! 세상에 그런 변태가!"

"내 이제까지 짧지 않은 인생을 살아왔지만, 계집년한테 본의 아니게 생짜로 내  털을 뽑혀보기는 처음이네 그려!"

"이건 사내로서의 자존심 문제 아닌가"

"아암! 그렇고말고."

이들이 모두 분개하고 있을 때 사천이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설마 그럴 리야 있겠는가 이 세상 어느 여자가 사내의  털을 감히 뽑아낸단 말인가"

"하지만, 그건 사실이에요."

갑자기 맑고 낭랑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모두들 깜짝 놀라 방금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았다. 어느 틈엔가 사냥꾼 복장을 한 가경 처녀가 이들을 향해 우뚝 서있었다. 얼룩덜룩한 짐승의 털가죽을 이리저리 맵시 좋게 엮어가지고 적당히 몸에 걸치고 있는 가경 처녀의 지금 이 모습은 조금 전에 나물을 캐던 순진한 처녀의 모습과는 너무나 딴판이었다.

가경 처녀는 자기 왼 손가락 마디 사이사이에 끼워 넣은 가느다란 털 오라기들을 잠시 흔들어보이다가 입김으로 세차게 후욱 불어가지고 공중에 모두 날려버렸다. 그것은 방금 전에 뽑혀졌다고 아우성을 쳐댔던 사천과 내덕 부하들의 귀중한  털임에 틀림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것을 본 부하들의 얼굴이 순간 크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아, 아니. 그나저나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내덕은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 듯 방금 사냥꾼 모습을 하고 나타난 가경 처녀와 위치가 정 반대인 동굴 입구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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