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6>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6>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9.1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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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살이에 죽은 태양신 '발드르'
발드르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신들의 황혼

▲ 동생이 쏜 겨우살이 화살은 정확하게 발드르의 심장을 꿰뚫었고, 발드르는 잠시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겨울을 상징하는 겨우살이가 빛과 여름의 신 발드르를 이긴 것이다. 게르만 신화에서 겨울과 추위, 눈(雪)은 악함과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갈리아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겨우살이 가지는 특별한 의미를 주는 나무였습니다. 주민들이 마법사라고 부르는 드루이드 사제들은 겨우살이와 겨우살이가 기생하는 나무만큼 성스러운 것이 없다고 여겼지요. 겨우살이가 붙어 자라는 나무는 떡갈나무여야 한다는 전제가 붙긴 했어도 말입니다. 사제들은 떡갈나무 숲을 성스러운 장소로 지정하고 떡갈나무 잎 없이는 어떠한 제사도 지내지 않았습니다. 드루이드(Druides)라는 이름도 그들의 떡갈나무 숭배에서 유래된 그리스어에서 나온 것이지요. 사제들은 떡갈나무에서 자라는 겨우살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며, 신의 나무로 선택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폴리니우스 1세는 갈리아에 살던 켈트족의 드루이드교 사제들이 제사의식에서 행한 겨우살이에 대해 많은 기록을 남겼다. 겨우살이는 다른 나무에 기생하며 스스로 엽록소를 만드는 반 기생식물로, 사계절 푸른 잎을 지니고 있다. 한방에서는 겨우살이의 줄기와 잎을 이용해 동상을 치료하거나 칼에 찔린 상처를 낫게 하기도 한다. 드루이드 사제들이 숭배할 정도로 켈트족에게 겨우살이는 구원의 표시이자 번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게르만족은 이와 정반대의 상징을 가지고 있다. 그들에게 겨우살이는 신들의 피 묻은 범죄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북유럽의 위대한 신 오딘에게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있었다. 태양신이자 빛과 여름의 신이라 불리는 아들 발드르는 '흰 것' 또는 '영광'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북유럽의 신들 중에서 가장 용모가 빼어났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똑바로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광채로 빛났으며, 윤기 흐르는 머릿결과 하얀 피부를 가지고 있었다. 외모만이 아니라 성품도 온유하고 정직하여 태어난 이후 단 한 번도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집은 '브레이다 블리크(넓어지는 빛)'라고 하여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거짓말하는 사람은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기에 그의 집안에서는 어떠한 재앙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또 신들이 가진 배(船) 중에서 가장 크고 둥근 뿔을 가지고 있었다. 크고 둥근 뿔은 바이킹족에게도 명예와 자랑이었다. 이처럼 거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갖춘 그였지만, 하나의 결점이 있었다. 결점은 다름 아닌 그가 내리는 심판이 가끔 명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결점도 아들인 정의와 심판의 신 포르세티가의 도움으로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을 하던 발드르는 어느날 밤 꿈에 자신이 죽는 꿈을 꾸었다. 아들로부터 불길한 꿈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버지는 저승 무녀에게 찾아가 사정을 했다. 꿈대로라면 틀림없이 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며, 운명을 바꿔달라고 했다. 하지만, 무녀는 발드르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남편으로부터 아들이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神託)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 속에서도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 아들을 어떠한 경우라도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 주세요." 그녀는 모든 신과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아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보증을 받아냈다. 발드르는 이제 어떤 무기로도 해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신들은 발드르가 칼에 찔려도 진짜로 죽지 않는지 시험해보기도 했다. 죽기는커녕 상처조차 입지 않는 그를 보며 신들은 더 많은 사랑과 신뢰를 보냈다.

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는 사악한 파멸의 신 로키는 발드르를 죽여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발드르를 해치지 않기로 서약을 했기에 직접 죽일 수는 없었다. 세상을 둘러보던 그에게 '발할라'(북유럽인들의 이상향) 문 옆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나무가 눈에 띄었다. 어리고 연약한 겨우살이만이 발드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알아냈다. 로키가 겨우살이를 캐내 조그만 화살을 만들어 발드르를 찾아간 날, 그는 신들과 활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로키는 발드르의 동생 맹인의 신에게 다가갔다.

"발드르가 형이라 화살을 쏘지 않나요"

"나도 쏘고 싶지만, 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무기도 없답니다."

"여기 내가 가져온 여린 나뭇가지로 만든 화살이 있으니 발드르를 향해 쏘아 보세요. 방향은 내가 알려줄게요."

동생이 쏜 겨우살이 화살은 정확하게 발드르의 심장을 꿰뚫었고, 발드르는 잠시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배를 타고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발드르를 본 그의 아내는 심장이 파열되어 남편의 뒤를 죽음으로 뒤따랐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크고 깊었다.

게르만족이 섬기는 위대한 태양신 발드르가 연약한 겨우살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겨울을 상징하는 겨우살이가 빛과 여름의 신 발드르를 이긴 것이다. 게르만 신화에서 겨울과 추위, 눈(雪)은 악함과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대결에서 궁극적인 승리는 악에게 돌아간 것일까, 신화는 종말의 마지막 전쟁 후 태양신 발드르가 부활하여 세상을 든든하게 지키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신화에서처럼 사람들의 소망 또한 밝고 따뜻한 것이 어둠과 추위를 이겨내 선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비추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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