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살이에 죽은 태양신 '발드르'
발드르의 죽음과 함께 찾아온 신들의 황혼안정되고 풍족한 생활을 하던 발드르는 어느날 밤 꿈에 자신이 죽는 꿈을 꾸었다. 아들로부터 불길한 꿈 이야기를 들은 그의 아버지는 저승 무녀에게 찾아가 사정을 했다. 꿈대로라면 틀림없이 아들이 죽게 될 것이라며, 운명을 바꿔달라고 했다. 하지만, 무녀는 발드르의 죽음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고 했다. 남편으로부터 아들이 죽을 운명이라는 신탁(神託)을 전해들은 어머니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 속에서도 간절하게 기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내 아들을 어떠한 경우라도 해치지 않겠다고 맹세를 해 주세요." 그녀는 모든 신과 사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로부터 아들을 해치지 않겠다는 보증을 받아냈다. 발드르는 이제 어떤 무기로도 해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신들은 발드르가 칼에 찔려도 진짜로 죽지 않는지 시험해보기도 했다. 죽기는커녕 상처조차 입지 않는 그를 보며 신들은 더 많은 사랑과 신뢰를 보냈다.
이들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고 있는 사악한 파멸의 신 로키는 발드르를 죽여야만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도 발드르를 해치지 않기로 서약을 했기에 직접 죽일 수는 없었다. 세상을 둘러보던 그에게 '발할라'(북유럽인들의 이상향) 문 옆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나무가 눈에 띄었다. 어리고 연약한 겨우살이만이 발드르를 해치지 않겠다는 서약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알아냈다. 로키가 겨우살이를 캐내 조그만 화살을 만들어 발드르를 찾아간 날, 그는 신들과 활쏘기 놀이를 하고 있었다. 로키는 발드르의 동생 맹인의 신에게 다가갔다.
"발드르가 형이라 화살을 쏘지 않나요"
"나도 쏘고 싶지만, 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무기도 없답니다."
"여기 내가 가져온 여린 나뭇가지로 만든 화살이 있으니 발드르를 향해 쏘아 보세요. 방향은 내가 알려줄게요."
동생이 쏜 겨우살이 화살은 정확하게 발드르의 심장을 꿰뚫었고, 발드르는 잠시 후 숨을 거두고 말았다. 배를 타고 죽음의 여행을 떠나는 발드르를 본 그의 아내는 심장이 파열되어 남편의 뒤를 죽음으로 뒤따랐다. 졸지에 사랑하는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어머니의 슬픔은 크고 깊었다.
게르만족이 섬기는 위대한 태양신 발드르가 연약한 겨우살이 화살을 맞고 죽었다. 겨울을 상징하는 겨우살이가 빛과 여름의 신 발드르를 이긴 것이다. 게르만 신화에서 겨울과 추위, 눈(雪)은 악함과 세상의 종말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선과 악의 대결에서 궁극적인 승리는 악에게 돌아간 것일까, 신화는 종말의 마지막 전쟁 후 태양신 발드르가 부활하여 세상을 든든하게 지키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신화에서처럼 사람들의 소망 또한 밝고 따뜻한 것이 어둠과 추위를 이겨내 선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비추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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