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와 막걸리, 그리고 고무신
선거와 막걸리, 그리고 고무신
  •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 승인 2013.12.1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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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영의 에세이-우리말 나들이
김우영 <작가. 한국문인협회>

요즘은 보기 힘든 광경이지만 예전에는 선거철마다 ‘막걸리’가 등장했다. 입후보자는 시골 동네 정자나무 아래나 마을회관 앞에 멍석을 깐다. 그런 후 부인네, 남정네, 어린애 할 것 없이 모아놓고 막걸리 판을 벌여주고 ‘검정고무신’을 한 켤레씩 뒷줌에 찬다. 그러면 후보자의 정견 발표는 둘째 치고 너 나 할 것 없이 큰 막걸리 사발을 한 탁배기 들고, 한 손에는 김치에 싼 돼지고기를 집어 들고 후르륵 후르륵 마셔댄다. 어린이들도 침을 삼키며 부모님 바짓가랑이에 매달려 두부에 김치를 싼 것을 얻어먹는다. 어떤 이는 어린이한테 막걸리도 한 사발 먹인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먹는다는 거 아녀!”

배고팠던 한 시절의 일이다. 어느 후보가 낸 막걸리를 연거푸 마신 탓에 하늘이 노래져 너도 나도 취한다.

그러다가 양지 뜸 박 서방과 개울건너 탱자나무집 차돌이 애비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한다. 결국에는 삿대질을 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며 격론을 벌인다.

“아니, 이 사람이 되야 혀유. 이 사람은 농민의 아들이니께유 우리네 심정을 잘 알아 밥은 굶기지 않을 것 아닌가비유!”

동네 사람들은 어느 후보가 당선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지연, 학연, 혈연이 기우는 쪽으로 패가 자연스럽게 갈라진다. 박 서방과 차돌이 애비는 술에 취해서 침을 튀기며 언성이 높아지고 결국은 멱살을 잡히고 삿대질로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나이든 노인들이 나서서 말린다.

“이러면 안되여, 안되여! 서로 친분대로 표 찍는 거 아녀. 민주주의 아닌가베!”

이쯤 되면 푸짐하게 막걸리를 내었던 후보는 살그머니 자리를 뜨고, 동네 사람들은 또 끼리끼리 패를 지어 둘러앉아 남은 막걸리를 마셔댄다. 이런 때면 다들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치 평론가가 된다. 정부가 하는 일이 다 그렇고 잘못된 농정으로 농투성이만 서럽고 어렵다면 만만한 막걸리 사발만 불끈 쥐었다 내팽겨쳤다 한다. 또 어떤 이는 그래도 이만하면 우리가 노력하고 잘살아 보는데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한다.

이들은 남은 돼지고기와 생두부모를 어거적어거적 씹어댄다. 어느 억척 아줌마는 남은 음식을 신문지에 싸서 집으로 가져간다. 집에 몸져누워 있는 할머니 드려야 한단다. 모처럼 뻑적지근한 공술을 왁자지껄하게 한바탕 마셨다. 서편 재너머로 붉게 타는 저녁놀을 보며 거나하게 술에 취했다.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콧노래까지 부르며 집으로 간다. 그 시절에는 이런 휴머니즘과 서로의 신뢰와 미덕이 있어 훈훈했다.

그러나 요즈음의 선거 풍토는 잘못되어가고 있다. 서로 상대 후보를 비방하며 모든 것을 돈으로 매수하려 드는 금관타락의 선거이다. 어떤 후보는 과분한 음식제공으로 불고기에 맥주, 맥주로 초호화 먹자판 잔치다.

영국을 철학자 ‘루소’는 말했다.

“유권자가 힘을 주고 찾는 권리는 표 찍는 순간 뿐, 되돌아서면 권부의 노예가 된다”.

지방자치제가 정착하면서 각종 선거가 수시로 열린다. 이때 지역과 골목골목은 선거열풍으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과연 우리는 지금 한 사람으로서 민주주의의 소중한 주권을 행사하려는 것인가. 아니면 표 찍고 되돌아서면 노예가 되기 위한 몸부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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