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랑
허 장 무
내가
누구의 처마에 들어
그렁저렁 물 긷고 바느질하는 동안
제법 웅숭깊어진 나이테를 두르고도
자주 서글퍼져서 동구 밖을 서성이다가
울바자 뒤로 고개 쑤욱 내밀고 목백일홍처럼
한참씩 눈이 젖어 돌아가던 사람 있었나니.
나 또한
그 사람 그늘에 들지 못하고
밤이 이울도록 문풍지 소릴 듣다가
물안개 서린 달빛에 남세스럽던 눈물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한쪽으로 고개 튼
명자나무 흰 비단 같은 꽃으로
더욱 서느런 어깨 흔들고 있을지 몰라.
'밀물 든 자리'(문학과 경계)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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