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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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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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랑

허 장 무

내가
누구의 처마에 들어
그렁저렁 물 긷고 바느질하는 동안
제법 웅숭깊어진 나이테를 두르고도
자주 서글퍼져서 동구 밖을 서성이다가
울바자 뒤로 고개 쑤욱 내밀고 목백일홍처럼
한참씩 눈이 젖어 돌아가던 사람 있었나니.

나 또한
그 사람 그늘에 들지 못하고
밤이 이울도록 문풍지 소릴 듣다가
물안개 서린 달빛에 남세스럽던 눈물
다시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한쪽으로 고개 튼
명자나무 흰 비단 같은 꽃으로
더욱 서느런 어깨 흔들고 있을지 몰라.

'밀물 든 자리'(문학과 경계)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나이테를 두르고 홀로 서서 작은 꽃으로도 울안을 지키던 배롱나무가 아무리 외로워도 고개 돌려 우두커니 바라보는 마을이다. 그 마을의 작은 집에 세 들어 살던 사람의 사연을 읽는구나. 그렁저렁 순화된 모습으로 살던 시인의 뒤란에 명자나무 한 그루가 몸을 찔러 키운 생채기도 모르쇠 지나가던 서느런 어깨에 흰 어둠이 내린다. 문풍지에 귀를 열어 그렇게 살다보니 평생이었구나. 잃은 듯 잊은 듯 살았지만, 어느 것이라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눈물로 이룬 바다로 가는 그 순한 마음이 가볍게 흔들린다. 눈이 젖어 돌아가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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