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斷想) 58 - 망치질로 살든 곰 탈을 쓰고 살든
단상(斷想) 58 - 망치질로 살든 곰 탈을 쓰고 살든
  • 윤승범 <시인>
  • 승인 2013.10.17 1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승범시인의 지구촌풍경
윤승범 <시인>

내가 사는 동네에 커다란 광장이 있습니다. 광장에는 술집도 많고 당구장, 커피숖, 롯데리아, 휴대폰 가게 등등 항상 번잡하고 번다합니다. 그 중에도 사거리 모퉁이에 자리잡은 롯데리아 햄버거 집이 가장 번다한데 거기서 두 가지 풍경이 보입니다.

이 거리를 단골로 다니면서 고물을 주우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커다란 물건들을 주워 와 가게 앞에서 망치질을 하며 분해를 하고 계십니다. 길을 가는 행인들은 주변을 돌아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사람들이 지나가든 말든, 피해가든 말든 그렇게 뻘뻘 분해하고 해체해서 고철로 쌓아두는 곳이 바로 또 그 가게 옆입니다.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인지 민폐를 끼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저렇게 해서라도 한 끼의 끼니를 이어야 합니다. 지치고 힘든 삶이라 남을 배려할 여유가 없습니다. 지금 할아버지의 풍경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의 땀의 의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가게 옆에는 부쩍 많이 생긴 휴대폰 가게가 보입니다. 가게를 선전한다고 커다란 곰 인형을 머리에 뒤집어 쓰고 전단을 나눠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기다란 목발을 신은 꺽다리 광대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게 앞에는 같은 모양과 색을 지닌 유니폼을 입은 아가씨들이 호객을 합니다. 오가는 사람들 모두 그들의 호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 풍경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니라 곰 인형을 뒤집어 쓴 젊은이의 땀 이야기입니다.

뜨거운 날씨에 곰의 탈을 뒤집어 쓰고 춤을 추기가 고역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은 하얗고 손은 보드랍습니다. 땀을 흘리더라도 노역으로 인한 땀은 싫다는 것이겠지요. 곰 인형을 쓰고 흘리는 땀도 노동은 노동이지만 그들의 노동과 망치를 쥔 할아버지의 노동은 분명 다를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종일 걸어다니며 손수레에 실어 온 고물을 해체하고 나눠서 번 돈의 액수는 얼마 안되겠지요. 그러나 요즘 부쩍 는 휴대폰 매장의 수익은 하루에 두어 개만 팔아도 한 달을 날 수 있는 액수라고 합니다. 힘든 것은 꺼리고 쉬운 것을 선택하겠다는 젊은이의 현명함이 쓸쓸합니다. 세월에 도태되어 다른 일을 할 수 없으니 망치질을 할 수 밖에 없는 할아버지의 우직스러움 또한 쓸쓸합니다. 어느 무엇이 옳다 그르다는 없습니다. 무엇이 현명하고 무엇이 우직한 것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선명하게 다른 두 종류의 풍경일 뿐입니다.

한 때는 유모차를 끌고 다니시며 폐휴지와 고물을 줍는 노인들을 안타깝게 바라 본 적이 있습니다. 편한 것만 찾는 젊은이를 비난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결에 그런 이분법적인 사고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젊었고 늙었고를 떠나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이지요. 망치질을 하는 땀이라고 해서 고결하고, 곰탈을 쓰고 흘린 땀이라고 해서 안 고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우칩니다. 망치질을 하기까지 살아온 삶이 어떻게 늙었는지를 생각해야 하고, 곰탈을 뒤집어 쓰고 흘린 땀이 어떻게 늙을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듯합니다.

망치질을 하는 삶이라고 아련하고 곰탈을 쓰고 사는 삶이라서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웁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묻고 어떻게 살아 왔는지를 거듭 묻습니다. 망치질로 살든 곰 탈을 쓰고 살든 그 삶의 노고는 다르지 않습니다. 내 삶의 수고로움이 거듭 다른 삶에게 해가 되지 않는 것이기를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