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바라보기
제대로 바라보기
  • 임성재 기자
  • 승인 2013.08.13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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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재의 세상엿보기
임성재 <프리랜서 기자>

같은 사물이라도 바라보는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르게 보인다. 건축도면에 나타나는 평면도와 측면도, 조감도를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1980년대 시위현장에 나가면 방송취재 카메라는 자연스럽게 진압경찰의 뒤에 자리 잡았다. 당시엔 방송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따가웠다.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쯤으로 바라보는 그 따가운 시선을 견디어야 했고 때론 취재를 방해하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시위대와 맞서야 했다. 진압경찰의 뒤에서 바라보면 시위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그래서였을까, 취재의 내용은 카메라가 바라보는 시위대의 폭력성이 주를 이루었다.

1987년 민주화운동이후에는 상황이 크게 변했다. 방송사에 노동조합이 결성되면서 뼈를 깎는 자기반성이 시작됐고, 보도의 방향도 확연히 달라졌다. 국민은 방송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시위현장에서 방송사의 카메라는 당당히 시위대 속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시위대 뒤에서 바라보면 진압경찰이 보인다. 비로소 진압경찰의 폭력성도 여과 없이 보도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있는 위치에 따라 바라보는 방향이 달라진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사물의 모양이 달라지고 취재의 내용이 결정된다. 방송, 올바른 언론이라면 자신의 정체성을 떠나 시위대의 뒤에서도 바라보고 진압경찰의 뒤에서도 바라보면서 객관적인 사실을 전달해야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방송들은 자신들이 보고자하는 방향으로만 바라보는 경향이 다분하다. 어떤 경우에는 억지로 바라보는 방향을 비틀기도 한다. 지나치게 정권이나 재벌을 편드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아예 눈을 감아버리기도 한다. 이렇게 자신의 본분을 잃어가는 동안 국민들의 관심에서 서서히 멀어져 가고 있음을 감지하지 못한다.

지난 10일, 서울광장에는 5만여 명의 촛불 인파가 몰렸다. 전국적으로는 10만 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10여 차례 진행되면서 지속적으로 참가하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고 다양한 계층의 종교인, 지식인들과 중, 고등학교 학생에 이르기까지 시국선언도 늘어나고 있다. 사회학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현상으로 분석된다. 또 언론의 입장에서 보면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방송사들은 촛불을 취재하지 않았다. 취재라는 말을 써주기도 부끄럽다. 그들은 촛불을 다루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들에게 묻고 싶다.

이제 촛불현장에서도 방송사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끄떡하면 전파는 공공의 재산이며 방송은 국민의 것, 공영방송이라고 주장한다. 그런 그들이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촛불현장에 아예 카메라나 취재팀이 나타나질 않는다. 철저히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보도는 아니더라도 방송의 중요한 기능중 하나인 역사의 현장을 기록으로나마 보존하려는 의지도 보이질 않는다. 정권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지는 우리 방송의 현실이 서글프다. 국민들은 5공화국 때 방송사들의 다르게 바라보기를 무섭게 비판했던 일들을 분명히 기억한다. 그런데 다르게 바라보기보다 훨씬 견디기 힘든 것이 지금의 무관심이다. 분노는 관심의 반증이다. 국민들의 관심에서 더 멀어지기 전에 방송사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공영방송의 시청료 인상을 논의 중이란다. 본분은 팽개치고 밥그릇은 키우고? 잘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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