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4>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9.01 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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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의 신을 조종한 청년

반 기 성

번개신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진난봉

새로운 우사(雨師)의 탄생

 

   



사람이 벼락을 맞고도 살 수 있을까.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적으로 해마다 2500만 차례의 벼락이 떨어져 2000~3000명이 죽는다고 한다.

미국에는 벼락에 맞고 살아난 사람들의 모임이 있다. 이들은 1년에 4회 정기적으로 모여 번개에 관한 정보를 나누고 회보를 발행한다. 회보 제목이 '맞거나, 안 맞거나'라고 하는데, 회보의 아래 부분에 작은 글씨로 "만약 당신이 번개에 맞으면 우리에게 오세요"라고 써 있다고 한다.

김영하의 소설 '피뢰침'에는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들만 모여 사는 행성 '아다드'가 나온다. 아다드는 현실 속의 행성이 아니라, 컴퓨터 통신망 속에서만 존재하는 공간이다. 어느 날 벼락을 맞는 '전격(電擊)'을 체험한 사람들이 내상의 정신적 상처를 숨겨오다, 그들만의 경험을 나눌 수 있는 사이버 공간으로 모여들어 함께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벼락을 맞고 살아난 사람이 우리나라에도 있겠다 싶어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있다. 이웃나라 중국에는 벼락에 맞은 사람이 오히려 번개의 신을 조종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먼 옛날, 중국의 광동성 뇌주(雷州)에 진난봉(陣鸞鳳)이라는 청년이 살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예를 연마하여 무예실력이 뛰어났으며, 음양오행 등의 주역(周易)에도 통달한 사람이었다. 성품이 유순하여 어려운 사람을 보면 적극 도와주었고, 억울한 사람을 대신해 싸워주기도 했다. 의협심이 강하고 담대하여 귀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를 두고 친구들은 전설속의 호랑이와 용을 물리친 사람이 되살아 왔다고 말했다.

어느 해 그가 사는 마을에 큰 가뭄이 들었다.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논밭의 모든 작물이 말라죽어 갔다. 며칠만 더 비가 내리지 않으면 사람들까지 굶어 죽어야 할 판이었다. 원래 이 마을이 뇌주(雷州)라 불린 것은 번개가 많이 치기 때문이었는데, 유독 이 해 봄에는 비는 커녕 마른번개 한 번도 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번개 신을 모신 사당에 모여 기우제를 올렸지만 비는 한 방울도 내리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번개 신의 고향이라고 생각해서 사당까지 만들어 놓고 제를 올렸습니다. 하지만 번개 신은 제(祭)를 받기만 하고 정작 우리가 필요할 때 비를 내려주지 않습니다. 곡식은 시들고, 못과 저수지는 바싹 말라 버렸습니다. 이제는 사당에 바칠 제물도 없습니다."

한 참을 생각하던 청년은 번개 신을 모신 사당에 불을 질러버렸다. 지혜로운 청년은 귀신에게 고분고분하는 것보다 화나게 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마을에는 물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먹으면 벼락에 맞아 죽는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고 있었다. 그는 들판으로 나가 보란 듯이 물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구워 먹었다. 잠시 후 들판 끝에서 시커먼 구름이 피어오르면서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어왔다.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시커먼 물체가 다가오며 벼락을 때리기 시작했다.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던 청년이 칼을 빼 공중으로 휘둘렀다.

잠시 후 칼에 맞았는지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땅으로 떨어졌다. 살펴보니 생김새는 멧돼지와 비슷한데, 뿔에는 털이 나있고 어깨에는 날개가 달려 있었다. 손에는 자루가 짧은 도끼를 들고 있었고, 칼을 맞은 허벅지에서는 폭포처럼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먹구름도 사라지고 비도 그쳐 있었다.

"내가 번개 신의 허벅지를 잘랐습니다. 번개 신이 들판에 쓰러져 있으니 우리 함께 가 봅시다."

청년은 마을 사람들을 들판으로 불러 모은 다음 번개 신에게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고 했다. 하지만 후환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 청년이 머뭇거리는 사이 하늘에는 다시 번개 구름이 피어올라 쓰러진 번개 신을 부둥켜안고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때부터 온 하늘이 시커멓게 변하더니 5시간 동안이나 큰 비가 쏟아졌다. 죽어가던 작물들이 살아나고, 개천에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저수지에는 물이 가득 차올랐다.

가뭄을 해결해 주었는데도 번개 신의 보복을 두려워한 마을 사람들이 청년을 피하는 바람에 그는 갈 곳이 없었다. 결국 외숙부네 집에 갔더니 밤에 벼락이 떨어져 집이 불타버렸다. 이번에는 절에서 잠을 자려고 하는데, 번개 신이 벼락을 내려 절을 태워버렸다. 청년이 칼을 빼들고서 하늘을 향해 눈을 부라리면 감히 덤비지 못하다가도 청년이 잠자리에만 들면 벼락을 치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마을 뒷산의 동굴 속에 들어가 머무니, 그 후부터 번개가 치지 않았다. 사흘 밤을 동굴 속에서 보낸 뒤 청년은 집으로 돌아왔다.

가뭄이 들면 마을 사람들은 큰 돈을 주고 청년에게 부탁을 했다. 청년이 들판에 나가 물고기와 돼지고기를 함께 먹은 다음 칼을 들고 서 있으면 억수같은 비가 쏟아져 가뭄이 해소되곤 했다. 비만 내릴 뿐 천둥을 치거나 벼락을 때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은 이후부터 청년을 비를 내리게 하는 신과 같다 하여 '우사(雨師비의 신)'로 불렀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이조(李肇)가 쓴 '당국사보(唐國史補)'에도 기록되어 있다. '담대하고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번개 귀신도 피해간다'는 구절이 함께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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