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시가있는마을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8 09:0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 면
이 세상에 꽃이 피는 건
죽어서 꽃으로 피어나고 싶은 사람이 있는 까닭이다.
그래도 이 세상에 사람이 태어나는 건
죽어서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은 꽃이 있는 까닭이다.
그렇지 않으면
정녕 그렇지 않다면
왜 꽃이 사람들을 아름답게 하고
왜 사람들이 가끔 꽃에 물을 주는가
그러나 나는 평생 잠을 이루지 못한다
왜 꽃처럼 아름다운 인간의 마음마다
짐승이 한마리씩 들어앉아 있는지
왜 개 같은 짐승의 마음속에도
이름다운 인간의 마음이 들어앉아 있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평생 불면의 밤을 보내는
한 마리 짐승이다.

시집 '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중에서

<김병기시인의 감상노트>

꽃이 핀다는 건, 꽃으로 피고 싶었던 절절한 열망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태어난다
   
는 건, 사람으로 태어나고 싶었던 깊은 염원이 있기 때문이다. 연기(緣起). 내가 있다는 건 네가 있는 까닭이라서 나 혼자 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홀로 살 수 없는 건, 나 되기 전에 손 꼭 모은 채 벼랑을 쉽게 뛰어내리는 갈망이 있음을 알아 두라. 그래서 꽃을 보면 나의 오관(五官 눈 귀 코 혀 살갗)을 다 열어 놓게 된다. 그런데 살면서 이 우주 꽃에 짐승이 들어 노여움과 나쁜 마음이 그득하여 불면을 이룬다. 그 짐승을 죽여라. 내가 가서 꽃이 되면, 얼마나 많은 잘못을 빌며 눈물을 흘린 것인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