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3>
반기성의 신화속의 날씨 <33>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5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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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나쁜 북풍의 신 '보레아스'

악마처럼 차가우며 거친 바람 북풍의 신 보레아스

▲ 윌리엄 워터하우스-보레아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살을 에는 듯한 북풍은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거칠게 불어대고, 겨울밤의 밝은 달은 백설로 뒤덮인 대지를 차갑게 비추는데, 장군은 일장검을 짚고 서서 만리변성을 바라보며 충의를 다지고 있다. 시조에는 조선조 세종대왕 대에 4군 6진을 개척한 김종서 장군의 호방한 기상이 잘 드러나 있다. 시조에 나오는 삭풍이 바로 우리나라의 겨울철에 영향을 주는 차가운 북풍(北風)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북풍을 '높(高)바람' 또는 '뒷(後)바람'으로 기록했다. 이는 높은 곳에서 불어 내리거나, 비 온 후에 부는 차가운 바람이란 뜻으로 쓰인 듯싶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겨울철에 가장 많이 부는 바람이 북풍이고, 가장 거칠게 부는 바람 또한 북풍이다. 거센 북풍이 몰아치면 혹한(酷寒)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북풍은 유럽의 '보라(Bora)'와 북미지역의 '노더(Norther)'이다. 노더가 남쪽으로 강하게 내려오면 남부의 플로리다까지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한파를 겪어보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얼어 죽는다고 한다. 추위를 가져오기 때문일까, 그리스 신화에서 바람의 신 중 북풍을 주관하는 '보레아스'는 검은 구름을 휘젓고, 폭풍으로 바다를 둘러엎고, 떡갈나무를 뿌리 째 뽑고, 눈을 얼리고, 대지를 눈보라로 때리는 성질 고약한 신으로 그려진다. 그는 거인족인 새벽의 바람 신과 새벽의 여신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리스인들은 지금도 그가 흑해(黑海)의 동쪽과 북쪽, 즉 지금의 우크라이나 지방에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테네 땅을 선하고 정의롭게 다스리는 왕이 있었다. 왕에게는 착하고 아름다운 두 딸이 있었는데, 언니는 바람의 신 아이올리스의 손자와 결혼을 했다. 동생 오뤼튀이아는 언니보다 더 착하고 겸손해서 인간계는 물론 하늘의 신들까지 탐을 냈다. 착하고 아름다운 오뤼튀이아 공주의 소문을 들은 북풍의 신 보레아스는 한 달음에 달려와 왕에게 간청하기 시작했다. "장인어른, 큰 따님은 바람신의 손자에게 주셨으니, 둘째는 북풍의 신인 저에게 주십시오. 제가 바람 신의 손자보다 몇 배나 힘도 세고 잘 생기지 않았습니까" "둘째 딸은 지금 당장 시집을 가지 않겠다고 하네. 세상에는 오뤼튀이아보다 착하고 예쁜 신붓감이 많으니 다른데서 찾아보도록 하게나." "오뤼튀이아 공주가 없는 제 인생은 황량한 사막입니다. 제 모든 것을 다해 따님을 사랑하고, 신의 아내 중 가장 행복하게 해 줄 것을 다짐합니다." 아무리 애원하고 사랑을 고백해도 왕과 공주는 북풍 신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자존심을 꺾으며 애원했는데도 돌아오는 것은 냉담한 반응뿐이라 북풍의 신은 화가 나고 말았다. "그래, 이제부터는 내 본성대로 살아야겠다. 내가 가진 것이야 폭력과 분노, 위협이 아니던가, 나만의 힘과 재주를 이용해서 공주를 아내로 맞이하고 말 것이다. 바람의 형제들 가운데서도 내가 가장 악명이 높지 않던가, 힘으로 검은 구름을 휘젓고, 바다를 둘러엎고, 눈을 얼리고, 땅을 눈보라로 때리던 내가 아닌가, 내가 한 번 성질을 부리면 지옥까지도 몸을 사리고 부들부들 떤다. 내가 천하에 두려울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이제부터는 공주를 얻기 위해 사정하고 애원하지 않을 것이다. 당당하게 왕을 굴복시켜 내 장인으로 만들고야 말겠다." 북풍의 신 보레아스는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거칠게 날개를 흔들었다. 그러자 그리스 온 땅에 강풍이 불어닥쳤다. 땅은 혼란에 빠지고 바닷물은 뒤집혔다. 보레아스는 지상의 혼란스런 틈을 타 오뤼튀이아 공주를 구름으로 감싸 납치했다. 보레아스와 강제로 결혼을 한 오뤼튀이아 공주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다. 두 아들은 아버지처럼 날개가 달려 있어 하루에 천리를 날고, 500리를 걸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중에 금양모피(金羊毛皮)를 찾는 모험에 동참하게 된다.

북풍의 신 보레아스는 생식(生殖)의 신으로도 불린다. 암말들과 함께 12마리의 망아지를 낳았으며, 날개달린 말을 비롯해 많은 준마를 생산했다. 보레아스를 그린 그림에서 그가 뱃속에 갓난아이를 품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 것도 이 때문이다.

'악마는 강한 바람에서 강해진다. 바람이 잔잔하면 어떤 날씨도 나쁘지 않다' 전해 내려오는 민요의 노랫말처럼 북풍은 악마처럼 차갑고 무섭기에, 에르투리아인들은 핀란드의 나쁜 마법사가 악마를 불러 북풍을 몰아온다고 믿고 있다. 유럽신화에서는 북풍이 죽음과 연결되어 있으며, 영국인들은 살을 에는 추위와 부인과의 싸움도 북풍 때문이라고 한다. 슬라브족은 북풍이 검고 추운 땅에서 오며 우울과 어두움을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모두가 북풍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보레아스의 고약한 성질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성경에서 조차 '두려운 날씨가 북쪽에서부터 온다'(욥기 37:22)며 북풍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다.

하지만 중동의 이집트인들은 북풍을 '달콤한 바람의 황제'라고 부른다. 이집트에서의 북풍은 사막의 찌는 듯한 무더위를 잠시나마 식혀주는 꿀맛보다 더 좋은 바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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