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48>
잊혀져 가는 생활도구 <48>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8.24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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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간

글·사진 김운기 편집위원

뚝딱뚝딱~ 匠人의 땀스며

조선시대 칼과 창, 화살촉 만드는 병기창이 되기도…

 

인류가 석기시대는 나무와 돌로 생활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다가 청동기와 철기시대에 철광석을 발견하고 얼마나 놀라워 했을까. 철광석을 불에 녹여 쇠를 생산하면서 싸움에 쓰이는 창과 칼을 만들고 농기구와 생활도구를 만들면서 인류의 문명이 빠른 속도로 발전해 왔다. 이때 쇠를 다루던 곳이 대장간이다. 시골 광산촌에서 태어난 필자는 8살 되던해 늦은 봄날 아버지를 따라 처음으로 장구경을 갔다. 첫 번째 찾은 곳은 빨갛게 쇳덩이를 불에 달궈 뚝딱뚝딱 망치로 두들기는 대장간이었다. 아버지는 주름망태기 속에서 돌깨느라 무뎌진 '끌'과 못쓰게 된 낫과 호미 등을 꺼내 '잘 버려 놓으라'고 하시곤 대장간을 나섰다. 대장간에 일거리를 맡기고 장터로 나서자 큰북을 등에 짊어지고 둥둥 두들기며 어린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큰소리를 치면서 신명나게 한바탕 놀이를 하는 사람을 보았다. 장국밥으로 점심을 먹고 이곳 저곳을 돌며 생전 처음보는 신기한 것들을 골고루 구경시켜 주셨다. 대장간에 돌아온 것은 오랜시간이 지나서였는데 땀을 뻘뻘 흘리며 풀무질 하는 아저씨, 불에 벌겋게 달군 쇠조각을 작은 망치로 두들기는 아저씨, 큰망치를 양쪽에서 장단맞춰 두들기는 힘좋은 아저씨 등 모두들 정신없이 일하고 있었고 숯불에 달구어 만들어낸 도구들이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오전에 맡긴 연장들을 하나하나 챙기신 아버지는 돈을 지불하고 달구지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대장간은 시골에서 쓰이는 농기구는 물론, 각종 생활도구를 만들고 새로 재생하는 일종의 큰 공장이었다.

70년대 이후 농촌에도 전기가 들어오고 동력기계를 이용하는 농기구가 생산되면서 대장간 일이 줄어들게 되자 시골 대장간들이 문을 닫아 지금은 구경하기조차 어려워졌지만 20여년전 만해도 시골 큰장터에는 대장간이 있었다. 어느 시인이 대장간 구경을 하고 그곳에서 일어났던 일을 글로 적은 것은 읽어보면 재미 있다.

'달궈진 쇠를 작은 짚게로 집어서 혼자 두들기는 망치소리는 '또드랑 또드랑 탕'으로 이어지고 여기에 큰 메꾼 두사람이 양쪽에서 쇠메를 내려치면 '또드랑 탕탕 또드랑 탕탕' 음악소리 같이 하모니가 이루어져 하루종일 구경해도 지루하지가 않다'고 적었다. 그는 또 풀무질 소리도 풀무꾼이 앞으로 당길때 '푸우우' 뒤로 밀때는 '훅' 소리를 내서 풀무질 소리와 쇠달구는 불피어 오르는 소리로 '정감이 간다'고 적었다.

우리나라 대장간 역사는 삼국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외침이 많았던 조선시대에 칼과 창, 화살촉을 만드는 대장간은 국가가 경영을 하면서 각종병기를 만들던 병기창이 되기도 했다.

전기가 공급되면서 큰 공장에서 대량으로 값싸게 생산한 제품이 넘쳐 나 이제 대장간에서 손으로 두들겨 만들었던 생활도구 역시 자취를 감추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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