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렁그렁'
깊은 숲 속을 거닐 땐 권현형
맨발로 바람걸음으로 걸어야 합니다.
혹시 가던 길 멈추고 가만 엎드려
발밑 세상을 들여다보게 된다면
점보다 작은 꽃이
점보다 작은 꽃보다
더 작은 벌레를 거느리고 살아가는
좁고 작은 잎사귀 속
볕을 받을 때마다
파랗게 빛나는 어린 곤충이
눈물방울처럼 그렁그렁 매달려
남의집살이하는
애처로운 숲 속의 작은 집들을
만나게 될 테니까요.
거친 발에 밟혀 찌그러진 집
마른 잎사귀 속에도
작은 무당벌레가
잠시 들러 밀애를 나눌지도 모르는 일
깊은 숲 속에선 발밑이 온통 집입니다.
시집 '밥이나 먹자, 꽃아'(천년의시작)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바람이 숲에 이르면 신발을 벗고 맨발로 오르는 이유를 물은 적 있으세요. 잎사귀의 귀도 파주고 얼굴도 씻어주는 마음을
읽은 적 있으세요. 솔바람 불면 맑은 거울처럼 내 마음 곱게 보여주는 거 느낀 적 있으세요. 바람이 그렇게 걷는 건, 그렁그렁 눈물 맺힌
애벌레가 다칠까봐 가만가만 오르는 거 아세요. 잘 못 디디면 우주의 집이 무너진다는 거 아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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