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보무사 <130>
궁보무사 <130>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19 0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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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얘야! 정신 차려라! 아무도없소 지금 사람이 죽어가오
18. 소용돌이 속에서

모두 다섯 명쯤 되는 병사 놈들은 제각각 돌려가며 두릉의 어린 첩에게 할 짓 못할 짓을 전혀 가리지 않고 계속 퍼부어댔다.

어린 첩은 처음 얼마 동안은 울며불며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반항을 하는 듯 했지만, 그러나 마침내 모든 걸 포기해 버렸는지 아니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나머지 절반쯤 까무러쳐 버렸는지 간간이 가냘픈 신음소리만 내고 있을 따름이었다.

'세상에! 세상에 저럴 수가 있나! 저 아이가! 도대체 저 아이가 무슨 죄를 저질렀다고 저런 끔찍한 일을 무려 다섯 놈에게 당해야하는가. 그것도 내가 두 눈을 똑바로 뜨고서 지켜보는 바로 앞에서.'

두릉은 너무나 무력해진 자기 신세를 한탄해가며 눈물을 철철 흘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놈들은 제각각 욕심을 모두 채운 듯 하나둘 씩 바지춤을 다시 끌어올리며 감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두릉은 몹시 노한 눈으로 그들을 째려보았지만 주위가 너무 어두운 탓인지 어느 누구하나 그의 눈빛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 같았다.

주위가 다시 잠잠해지자 바닥 위에 나부라져있던 어린 첩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넋두리를 하듯 주위를 둘러봐가며 어린 첩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두릉님! 저의 주인님! 어디 계세요 지금 제가 이런 꼴을 당한 걸로 보아하니 주인님께서는 저보다 더욱더 험한 꼴을 당하시거나 아니면 이미 이 세상을 떠나신 것 같네요. 주인님! 주인님을 따라 저도 빨리 저세상에 갈래요. 제가 깨끗한 몸으로 진작 갔어야 되는 건데, 혹시라도 주인님을 마지막으로 한 번 뵐 수 있을까해서 겁 없이 따라온 게 잘못이었어요. 주인님! 주인님께서 사랑해 주시는 이 몸을 깨끗하게 지키지 못해 죄송스럽습니다."

어린 첩은 말을 마치자마자 기다란 저고리 옷고름을 뜯어내더니 곧바로 자기 목에 휘둘러 감았다.

'아앗! 저, 저런!'

두릉은 깜짝 놀랐다. 지금 저 여자가 다음에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 지는 너무나 뻔하기 때문이었다.

'아, 안 된다! 안 된다. 그러면 안 된다. 얘야! 제발 그러지 말거라. 내 너의 피치 못할 사정을 모르는 바도 아니요, 더욱이 나 때문에 네가 그런 꼴을 당했는줄 아는데 내가 무슨 낯짝으로 너를 나무라고 또 꾸짖겠느냐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을 터이니 제발 참아다오! 얘야! 제발! 죽지는 말아다오.'

두릉은 마지막 안간힘을 다해 소리치거나 몸을 움직이려고 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은 허사일 뿐이었다.

잠시 후, 옷고름을 옥죄듯이 자기 목에 감아 두르고 그 한쪽 끝을 철창살 맨 위 이음새 부분에 걸쳐놓은 어린 첩은 그대로 내리 뛰었다. 곧이어 그녀의 자그마한 몸뚱이는 쇠창살에 매달린 고깃덩어리처럼 잠시 바동거리다가 이내 축 늘어지고 말았다.

'아이고! 얘야! 얘야! 정신 차려라. 이봐! 아무도 없소. 지금 사람이 죽어가오.'

두릉은 울부짖듯 마구 외쳤지만 그러나 그것은 자기 귀에도 들리지 않는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다.

'아! 아! 내가 지금 이렇게 꼼짝도 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두 눈이 멀고 양쪽 귀까지 콱 막혀버렸더라면. 그렇다면 지금 저 가슴 아픈 광경을 못 보고 또 듣지 않았을 것이 아닌가 그나저나 이를 어이할꼬! 저 꽃다운 아이를 내 어이할꼬! 정말로 끔찍한 밤이로다! 무서운 밤이로다! 야속한 밤이로다. 내게 있어 평생 잊지 못할 아주 지긋지긋한 밤이로다. 어쩌면 마지막 밤이 될는지도 모르지만.'

두릉은 진저리를 치듯 온 몸을 부르르 떨고나더니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아까부터 그의 두 눈에서는 굵직한 눈물이 쉴 사이 없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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