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있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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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기자
  • 승인 2006.07.14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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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앞에서

대가리를 꼿꼿이 치켜든 독 오른 뱀 앞에
개구리 홀로 얼어붙은 듯 가부좌를 틀고 있다
비늘 돋친 이 독한 세상마저 잊어버리려는 듯
투명한 눈을 반쯤 내려 감은 채
마른 번개 널름거리는 캄캄한 아가리 속 꿈틀거리는
욕망이여, 온몸 징그러운 무늬의 삶이여
예서 길이 끝나는구나 벼랑 끝에 서고 보니
길없는 깊은 세상이 더 가까워 보이는구나
마지막 한걸음, 뒤에서 등을 밀어
그래, 가자 가자

신 한 켤레 놓여 있는 물가
멀리, 깁고 기운 물갈퀴 하나
또 한세상 힘겹게 건너고 있다

시집 '흙은 사각형의 기억을 갖고 있다'(민음사)중에서

<김병기 시인의 감상노트>


 생각하노니, 이 세상 힘겹게 사는 일 슬프도록 두려운 일이다. 독 오른 자본과 이기심과 멸시와 비인간의 초상이 범벅이 된 침으로 무장한 뱀의 아가리다. 그 앞에서 오금도 펴지 못한 채 얼어붙은 삶이란, 얼마나 깊은 눈물이던가. 그러나 말이다. 그렇다고 몸과 맘 다 팽개치고 산다면 산 것이라 할 수 있겠는가 투명한 눈 반쯤 지그시 감고 징그러운 무늬의 삶 앞에서 떨지 않는 가부좌도 틀어볼 일이다. 벼랑 끝에 서는 사람에겐 늘 길이 공중에 나는 법이다. 두려움은 싸워보지 못한 자의 비명이다. 가야할 길 멀고 깊으니, 무엇을 위해 지금을 소비할 것인가. 그래, 가자. 그런대로 이 삶이 아름답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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