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밥상을 기대한다
행복한 밥상을 기대한다
  • 오창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4.12 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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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오창근 <칼럼니스트>

투표 전날 대학생 독서토론 모임에 참석해 참관인 자격으로 토론과정을 지켜볼 기회를 얻었다. 투표를 앞둔 상황이라 대화는 자연스럽게 4·11 총선 결과와 예측에 맞춰졌고, 대학생들의 투표율이 예전보다는 높을 것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반값등록금', '청년실업 해결', '청년 일자리 창출' 등 대학생들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공약이 선거판에 큰 이슈가 된 것도 그들이 이번 선거에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다고 했다. 열띤 토론 속에서 정치적 방관자로만 보았던 20대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한 여학생은 "과거에 정치나 선거, 투표 등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투표권을 갖기 전 오로지 학업과 좋은 대학을 가야 한다는 경쟁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정치는 내일이 아닌 남의 일처럼 생각해 왔다. 대학에 들어오자마자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현실에서 정치는 또다시 관심 밖의 사안이 되었다고 항변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성적에 집착하도록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정치참여에 무관심하다고 20대를 비판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자기기만이 아니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20대는 정치 혐오증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고 주장하는 여학생의 말은 일면 수긍이 갔다. 이제와 정치적 참여가 왜 중요한지 알았다는 것에 안위를 삼았다.

민주주의 제도하에서 선거는 '다수결의 원칙'을 대명제로 삼고 있다. 다수가 결정한 사안을 정책으로 받아들이고 그 결정에 소수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 다수의 선택에 민의(民意)라는 포장을 덧입혀 확고부동한 기정사실로 받아들게 만든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다수의 선택이 최상의 선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수결은 최악의 선택을 피하기 위한 방책일 수도 있다. 그리고 다수결의 함정은 누구도 책임을 함께 지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책임을 부과하기에 다수가 갖는 모호성이 방패막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는 투표과정은 평등하고 민주적이나 그 결과를 놓고 해석하는 것은 또한, 정치권력을 독점한 소수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 비판도 함의하고 있다. 총선 결과에 대해 이해득실을 따지고 대선 전략을 놓고 밑그림을 그리는 정당과 달리 한표의 행사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고 믿는 여학생의 소박한 뜻과 순수성이 꺾여서는 안된다.

4·11 총선은 향후 대권향배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대선의 전초전이라는 의미 때문에 여·야가 사활 건 싸움을 했는지도 모른다. 반면 총선의 과정을 지켜보는 국민 제 각각의 판단은 이와는 많이 달랐다. 당명이 바뀌고, 비상대책위가 꾸려지고, 야권통합이 이루어지고 하는 과정에 국민의 목소리와 관심은 크지 않았다. 선거 당일 날까지도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당명조차 헛갈려 하는 국민이 많았다. 정치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그 책임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느냐고 불만을 이야기하는 여학생처럼 우리의 정치는 '그들만의 리그'처럼 국민 속에 파고들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다.

충북은 각종 의혹이 난무해 정책 중심의 선거는 기대할 수가 없었다. 참신한 인물보다는 지지도가 높은 사람이 공천돼 떠들썩한 축제의 장이 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선거는 늘 반목과 상처를 남길 수밖에 없다. 당선과 낙선의 간극을 축하와 위로의 말로 메워야 한다. 당선자는 국민 다수의 선택에 귀를 기울이고 공약에 책임지는 보습을 보여야 한다.

새누리당 박근혜 선거대책위원장은 "국회의원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행복"이라고 했고,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는 "투표는 밥이다"라고 했다. 이제 국민은 두 지도자의 말처럼 다수의 국민이 맛있는 밥상을 받아들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지 차분히 지켜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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