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사찰 공방
부끄러운 사찰 공방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2.04.02 21: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충청논단
권혁두 국장(영동)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 동독의 국가보안부 요원 비즐러는 반체제 성향이 강한 극작가 드라이만과 배우 크리스타 부부를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전기수리원으로 위장한 비즐러팀은 드라이만의 집에 잠입해 전화기는 물론 집안 곳곳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건물 꼭대기에 도청실을 설치한다. 이날부터 새벽 칫솔질을 시작으로 잠자리에 들기까지 드라이만 부부의 일상은 낱낱이 도청돼 보고서로 꾸며져 권력층에 보내진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보안부의 도청공작은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비즐러가 드라이만 부부의 올곧은 삶에 동화돼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이라도 당국에 꼬트리를 잡힐만한 부부의 언행은 빼버리거나 교정(?)해서 보고서를 만들었다. 드라이만과 방문한 동료들 사이에서 노골적으로 권력을 비판하는 대화들이 오갔지만 보고서의 말미는 '특이 동향 없음'으로 끝내기 일쑤였다. 비즐러의 태업 덕분에 드라이만은 동독의 높은 자살률을 체제의 문제로 분석해 비판한 글을 서독의 슈피겔지(紙)에 보내 게재되도록 하는데 성공했다.

발칵 뒤집혀진 국가보안부는 글의 작성자가 드라이만이라는 혐의를 잡고 증거를 찾기위해 부인 크리스타를 약물복용 혐의로 체포해 협박하고 회유한다. 견디다 못한 크리스타는 남편이 타자기와 원고 초안을 숨겨놓은 장소를 불게 된다. 보안부 요원들이 드라이만의 집에 들이닥쳐 원고가 숨겨진 마룻바닥을 열어제쳤지만 나온 것은 휴지조각들이었다. 비즐러가 먼저 드라이만의 집에 침입해 타자기와 원고를 치워버렸던 것이다.

지난 2006년 아카데미상(외국어 영화부문)을 받은 독일 영화 '타인의 삶'은 권력기관의 민간인 사찰을 가해자 시점에서 다뤘다. 비즐러는 자신의 감시 대상인 예술인 부부의 삶을 통해 권력의 주구가 돼 망가져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처절한 자기 성찰을 하게 되지만 조직과 동료를 배신해야 하는 이중의 삶속에서 고통스러운 일상을 살아간다.

가해자도 피해자 못지않게 상처를 입는 것이 공권력이 국익을 구실로 행사하는 감시와 사찰의 속성이다. 그나마 비즐러는 양심을 회복했지만 사찰의 최종 명령자인 문화부장관은 감시과정에서 드러난 약점으로 드라이만의 아내를 협박하고 추행하는 금수로 전락한다. 타인의 일상을 관찰하고 징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신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착각이 빚어낸 왜곡된 권위와 욕망에 탐닉하는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다.

최근 공개된 총리실 사찰 문건에서도 2009년 한 사정기관 간부를 미행해 내연녀와 나눈 대화에 표정까지 곁들여 자세하게 기록한 보고서가 나온다. 국가권력이 사생활까지 밀착 추적해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고 문건으로 남긴 정황은 영화에서 다룬 30년전의 공산국가 동독의 사례와 다를 게 없다. 고위 공직자뿐 아니라 대통령을 패러디한 그림으로 벽보를 만들어 붙인 노조원과 사립학교 이사장, 의사를 비롯해 촛불집회에 참가한 민간인들도 사찰 대상에 포함됐다고 하니 "이 나라가 민주공화국이 맞나" 하는 참담한 심정에 빠진다.

청와대는 공개 자료의 80%는 과거 노무현 정부 시절 총리실에서 이뤄진 사찰 내역이라며 역공에 나섰다. 야당은 "노 정부 때는 공직비리 척결을 위한 정상적인 직무감찰을 한 것이고 이명박 정부는 무차별적 민간인 사찰을 해 문제가 되는 것이다"고 반박했다. 청와대는 다시 정치인과 당시 민간단체장들을 실명으로 거론하며 노 정권 시절 사찰을 당한 피해자들이라고 응수했다.

대포폰을 동원하고 컴퓨터까지 파기해가며 사찰 자료를 없애려던 청와대 쪽에서 갑자기 지난 정권의 행적까지 들먹이며 사찰은 정권이 대물림해온 통상적인 업무였다고 고백하고 나선 저의가 의심스럽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과거 노무현 정부가 민간단체장과 정치인들을 사찰했다는 청와대 주장이 사실이라면 이도 그냥 넘어갈 문제가 아니다. 특검이 나서든 특별수사본부가 나서든 참여정부는 물론 그 이전 정권까지 포함한 광범위하고 전면적인 수사가 진행돼 앞으로 사찰의 '사'자만 들어도 기겁을 하는 권력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나 책임 공방에만 골몰하고 반성과 사죄는 외면하는 정치권의 낯두꺼운 행태에선 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과거정권도 마찬가지였다는 변명에 앞서 민주주의 시계를 거꾸로 돌린 과오에 대해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모습부터 보였어야 했다. 비즐러는 없고 당당하고 결연한 표정의 하수인이 등장해 '몸통은 나'라고 외치는 모습에서는 반성은 커녕 '그래서 어쩔거냐'는 듯한 오기마저 드러난다. 하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고 했던 사람들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