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차, 건축학개론 그리고 자본주의
화차, 건축학개론 그리고 자본주의
  • 정규호 기자
  • 승인 2012.03.29 21: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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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정규호 취재2팀장(부국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필수적으로 수많은 사연이 뒤엉켜 있을 수밖에 없다. 남녀 사이의 관계는 그것이 사랑이든 결혼이든 간에 더욱 치열하고 복잡하다. 그리고 그만큼 이야기가 많다.

'화차'와 '건축학개론'은 요즘 극장가에서 한국영화의 저력을 이끌어 가고 있는 대표작이다. 관객들의 입소문도 좋아 현재 박스오피스 순위에서 건축학개론이 1위를, 화차는 3위에 각각 올라 있다.

상위권 10위 가운데 한국영화는 단 3편에 불과한 현실을 감안하면 놀라운 성적이 아닐 수 없다.

한국 독립영화에서 여성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다큐멘터리 감독 변영주가 과감하게 도전한 영화 '화차'는 일본작가 미야베 마유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결혼을 한 달 앞둔 문호와 선영은 시골 본가 어른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비오는 고속도로를 달려간다.

그런데 휴게소에 잠시 멈춘사이 선영이 사라졌다. 시동이 걸린 차를 그대로 두고 갑자기 종적을 감추고 만 것이다.

그때부터 수의사인 문호는 미친듯이 그녀를 찾아 헤매고, 결국 그녀의 모든 것은 거짓이며 가짜인 것을 알게 된다.

그녀는 완벽하게 다른 사람으로 살아왔던 것이다. 그녀가 가짜로 살 수밖에 없던 까닭은 결국 돈 때문이다. 개인파산자이며 신용불량자의 신분으로는 절대로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자본주의의 극단은 그녀를 약자로 만들었고, 그 약함에서 탈출하는 수단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은 악인이 되는 것.

다른 사람의 신분으로라도 살아남아 빚 독촉에서 벗어나면서 그저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그녀의 욕망은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타인과 자신을 동일화시키는 것. 그 고통에는 자본주의의 욕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과연 누가 악인이고 누가 약자여서 누구를 연민해야 하는가.

이용주가 감독한 영화 '건축학개론'은 풋풋하고 애잔한 사랑영화다. 그것도 생각만해도 가슴 설레는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영화 제목이 '건축학개론'이라니 낯설기는 하다.

'개론'은 '내용을 대강 추려서 서술함. 또는 그런 것'이다. 그러나 영화 '건축학개론'은 절대로 내용을 대강 추려서 서술하지 않는다. 영화제목이 '건축학개론'이 된 것은 건축학과생 승민과 음대생 서연이 건축학개론 수업에서 처음 만났다는 표면적 상관관계가 있다.

그러나 그 수업에서의 인연은 '집'을 짓는 행위 건축과 사랑의 완성여부, 그리고 거기에서 파생되는 애절함이라는 또 다른 의미와 중첩된다.

서른다섯 살, 건축사가 된 승민 앞에 15년 만에 나타난 서연은 느닷없이 자신을 위한 집을 설계해 달라고 한다.

한 때 알고 지내던 사이라는 단순함이 아닌 서연 역시 가슴에 품고 있는 첫사랑의 아련함을 설계와 건축이라는 모티프로 연계한다.

젊은 날 첫사랑의 실연은 극중 대사 '첫사랑이 잘 안 되니까 첫사랑이지 잘 되면 그게 첫사랑이니? 마지막 사랑이지'라는 말로 함축된다.

영화 '건축학개론'에도 자본주의의 처연함은 숨어 있다. 승민에게 질투와 실연의 아픔을 주는 킹카 재욱은 강남에 산다. 반면에 승민은 강북, 그것도 휴대용 CD플레이어와 삐삐가 등장하는 영화의 배경 시대에는 아직 제대로 개발된 낡은 도시 정릉에 산다.

풍요로움과 상대적 빈곤함, 짝퉁 티셔츠와 자가용에 개인 오피스텔까지 갖고 있는 극단의 상대성은 제주도에 짓는 집이라는 이상향과 조우하면서 승민과 서연, 두 사람의 마음을 열게 하는 피안의 공간으로 작용한다.

행복과 첫사랑,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을 뛰게 하는 것들은 결국 이처럼 자본과 무관하지 않다. 그게 미스터리든 로멘스멜로든 개의치 않고 침투하는 자본주의의 속성은 서글프지만 결코 피할 수 없는 법. 그래도 4월에 앞 다퉈 피어날 꽃들을 기다려 볼 만한 세상,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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