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류블랴나, 그리고 귀로에 오르다
<38> 류블랴나, 그리고 귀로에 오르다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2.03.22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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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역사·낭만이 살아 숨쉬는 '아름다운 땅'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옹기종기 빨간 지붕·도시 곳곳 짙은 수림 평화로워
11박12일간 9개국 여행… 자연경관·유적지 감동적

동화 속 나라처럼 아름답던 블레드 호수 주변의 정경들이 눈앞에 아른거림을 뒤로 하고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로 향했다. 류블랴나의 구시가를 가로지르며 휘감아 도는 류블랴니카 강변에 있는 호텔에 늦게 도착하여 저녁을 먹은 후 방 배정을 받은 후 바로 잠에 떨어졌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강교장과 함께 시내 이곳저곳을 구경하면서 돌아보았다. 짧은 시간이라 많은 곳은 볼 수 없었으나 아기자기함이 돋보이는 사랑스러운 도시였다. 인구 30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였으나 벽돌로 된 골목길 등 유럽 특유의 분위기를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아쉬운 것은 이 나라 민족시인 프레세렌의 동상이 있는 프레세렌 광장과 광장을 중심으로 밀집되어 있는 고전주의 건물들, 그리고 구시가지의 외곽 쪽에 위치한 멋스러운 드래곤 브릿지 등을 보지 못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아쉽지만 오늘은 류블랴나를 마지막으로 발칸반도 여행을 끝내고 헬싱키를 경유하여 인천공항으로 돌아가도록 계획되어 있었다. 아침식사 후 류블랴나 공항을 향해 출발했다. 다행히 하늘은 높고 햇살이 빛나는 쾌청한 날씨가 우리의 기분을 상쾌하게 해 주었다.

도심을 벗어나 공항으로 달리는 버스는 넓은 도로 위를 막힘이 없이 시원하게 달리고 있었다. 류블랴나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도로 주변은 짙은 숲으로 전원적인 풍경을 자랑하고 있었다.

9시 10분쯤 류블랴나 공항에 도착했다. 한 나라의 수도에 있는 국제공항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공항 규모는 작았다. 우리는 공항청사 구내로 들어와 탑승 수속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밟았다. 공항 관계자들은 친절하고 까다롭지 않았다. 어딘지 푸근하고 여유가 있어 보여 좋았다.

공항 구내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오후 1시 10분 류블랴나 공항을 이륙했다. 파란 하늘 아래 눈 덮인 알프스 산록, 그 밑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빨간 지붕의 마을들, 파란 호수와 굽이쳐 흐르는 강줄기, 그리고 짙은 수림의 숲 등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하늘을 날았다.

오후 3시 40분 헬싱키 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발칸반도 여행 첫 기착지인 헬싱키에 다시와 낯설지는 않았다. 다시 수속 절차를 끝내고 오후 5시 인천국제공항을 향하여 헬싱키 공항을 이륙했다.

기내에서 저녁기내식을 맛있게 먹고 나니 비로소 아름다웠던 발칸반도를 떠나게 되는 구나라는 생각이 아쉬움과 함께 마음속으로 물결쳐 오면서 다시 한 번 되새겨 보게 되었다.

우리가 스쳐간 순간순간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만들어진 11박 12일간의 발칸반도 9개국 여행이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발칸반도는 일찍이 로마의 지배에서 오스만투르크의 오랜 지배로 이어졌지만 다양한 민족들이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이룩한 문화유산들을 보면서 감탄했다.

또 20세기 말에 와서 겪게 되는 민주화 운동, 한때나마 서로 다른 종교를 믿는 여러 민족의 사람들이 하나의 유고연방으로 살다가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분열하면서 겪게 되는 코소보 사태, 보스니아 등의 내전을 보면서 가슴 아파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아픈 상흔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부서지고 망가진 문화유산들을 재건하면서 다시 영광스러운 곳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그곳 사람들의 희망 부푼 표정을 볼 수 있어 반가웠다.

어쨌거나 아름다운 산록에 방목되고 있는 소떼와 양떼들의 평화스러운 광경, 협곡을 휘감고 흐르는 맑은 강물, 호수처럼 잔잔한 비취빛 아드리아 해, 그 해안을 안고 달리면서 보는 절경들, 그리고 동화 속 풍경 같은 오흐리드 호, 플리트비체의 호수들과 블레드 호수 등 낯선 풍경들이 가져다 준 아름다운 감동은 오래오래 가슴에 소중히 남아 기억될 것이다.

발칸반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표정이 내 가슴 속에 다시 한 번 아련하게 새겨지고 있음을 느끼면서 깊은 수면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얼마를 잤을까. 누군가 나를 깨우는 통에 잠에서 깨어났다. 우리 일행 중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조 사장이었다. 어제 잠시 이야기가 있었던 아름다운 새벽의 여명을 즐기라고 깨웠다고 한다. 잊지 않고 깨워준 조 사장이 고마웠다.

시간은 새벽 6시를 넘고 있었고, 비행기는 몽골 1만2000피터 상공을 날고 있었다. 기창을 열고 창공을 바라보았다. 순간 놀라운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캄캄한 동쪽 하늘 끝에 불그스레한 선이 일직선으로 가로 그어지고 있었다. 여명의 시작인 모양이었다.

그 불그스레한 일직선이 점점 짙은 붉은색으로 변하더니 그 단색의 선이 물감이 번지듯 점점 퍼져 나갔다. 마침내 거대한 주단을 펼 처 가듯 동쪽 하늘을 온통 주홍의 바다로 물들이고 있었다. 더욱이 구름의 두께에 따라 수시로 변하는 색깔의 조화는 더욱 장관이었다.

이윽고 그 한가운데에서 이글이글 불타는 붉은 태양이 아침 세수를 하고 나온 듯 마침내 그 선명한 얼굴을 내 밀었다. 정말 아름답고 신비로운 자연현상이었다. 남극이나 북극에서 흔히 볼 수 있다는 오로라 현상은 아닐 텐데, 한 동안 그저 넋을 잃고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몽환적 일출의 광경이었다. 산이나 바닷가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일출의 광경을 종종 보았지만, 이렇게 1만2000피터 상공에서 본 신비한 일출의 아름다움은 처음이었다.

이 신비스런 몽환적 일출의 자연경관을 시간에 맞춰 정확하게 볼 수 있는 행운을 차지하였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이번 여행에서 하늘이 내려준 마지막 선물이라 생각하고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어느 듯 비행기는 중국을 지나 우리나라 인천을 향해 기수를 돌리고 있었다. 비록 주마간산(走馬看山)격 여행이었지만, 여행은 항상 나를 뒤돌아보게 하고 삶의 향기를 더해주는 선물이었기에 이번 여행도 또 하나의 의미 있는 여행으로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다.

이제 내 발칸반도 여행기를 종료할 시간도 다가온 것 같다. 그동안 부족한 저의 발칸반도 여행기를 관심 있게 읽어 주시고 격려의 말씀을 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특히 지면을 할애해 주신 충청타임즈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끝>
위 부터 류를랴나 시내를 가로 질러 흐르는 류블랴니카 강, 류를랴나 시내 풍경 류블랴나 국제공항, 공항으로 가는 도로변에 가꾸어진 숲, 기창을 통해 바라본 신비한 일출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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