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속의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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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6.06.30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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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의 상징 오시리스의 부활
나일강의 범람이 부른 이집트의 번영

파리의 노트르담 사원 벽에는 흥미로운 조각그림이 있다.

▲ 죽은자를 심판하는 이집트 신화속의 '오시리스' "사람들은 죽으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게 됩니다. 저기 부조가 보이지요 죽은 사람들을 천칭 저울에 달아 죄를 판단한 다음 지옥과 천국으로 구분해 보낸다는 그림말입니다." 관광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진위야 어떻든 사람들의 삶에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는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런 마지막 심판은 성경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이집트의 신화에서도 사람이 죽으면 심판을 받는다고 전해져 온다. 이집트 신화에서 죽은 사람을 심판하는 신이 '오시리스'이다. 사자의 서(Book of the Dead)에 나오는 재판장면에서 오시리스는 죽은 자를 재판하는 법관의 보좌에 앉아 42명의 보좌관을 거느리고 앉아 있다. 장례신이 천칭(天秤)으로 한쪽에 죽은 자의 영혼을 놓고 다른 쪽에는 진리의 깃털을 놓아 죄의 무게를 저울질한다. 달의 신이며 지혜의 신이 결과를 기록한 후 재판장의 명령에 따라 죽은 사람은 천국과 지옥으로 가게 된다. 그리스 작가인 플루타르코스(Plutarchos)의 '이시스와 오시리스에 관하여'를 보면 오시리스에 관한 신화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혼돈의 상태에서 스스로 있었던 태양신 '라'가 스스로의 수정(受精)을 통해 공기의 신과 비의 여신을 낳았다. 공기의 신과 비의 여신이 사랑하여 둘 사이에 땅의 신과 하늘의 여신이 태어났다. 땅과 하늘 여신은 태양신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동침하여 자녀를 두게 된다. 이들의 자녀는 오시리스와 이시스, 세트와 네프티스라 불리며 이들은 각각 형제이자 부부 사이가 된다. 오시리스는 아내와 함께 이집트를 다스리면서 이집트에 찬란한 문명을 세워 나갔다. 그러나 오시리스가 이집트를 통치하던 제 28년째 되는 해에 그는 아우에 의해 살해당한다. 오시리스가 술에 취해 동생 부인을 자기 부인으로 오인하고 잠자리를 같이 했다. 평소에도 형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진 것을 시기하던 동생은 자기 부인이 겁탈 당하자 형을 죽이기로 계획한다. 성대한 잔치가 벌어지는 날, 동생은 형인 오시리스의 몸에 맞는 석관(石棺)을 만들어 석관을 몸에 가장 잘 맞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한다. 탐이 난 오시리스가 석관에 들어가는 순간 동생은 석관을 닫고 묶어서 나일강에 던져 버린다. 죽은 남편을 찾아 헤매던 오시리스의 부인은 먼 해변에서 가까스로 남편의 시신을 찾아 파피루스 숲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그마저도 사냥을 하던 동생에게 발각되어 버렸다. 동생은 오시리스의 시체를 다시 15조각으로 잘라 이집트 전역에 뿌려버렸다. 오시리스의 부인은 천신만고 끝에 시신 조각을 다시 찾아 어머니인 하늘 여신의 도움으로 시신을 미이라로 만든 다음 부활시킨다. 그러나 부활한 오시리스는 이승에 머물 수는 없었다. 그러기에 그는 떠나간 영혼이 머무는 '서방정토'인 저승 세계의 왕이 된 것이다. 이집트는 사막지대임에도 불구하고 7000년 전에 문명이 발생했다. 이집트에 문명이 발생할 수 있는 농경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나일강 때문이다. 나일강이 홍수 때 범람하고 이때 상류에서 떠내려 비옥한 흙과 물로 밀이나 보리를 비롯한 다양한 농작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농사의 성공은 해마다 6월에 시작되는 홍수에 달려 있었다. 6월 말까지 나일 강은 상류지역인 앙골라나 수단에 내린 비로 인해 수위가 상승한다. 수위가 상승하면 주변의 저지대는 순식간에 물로 덮인다. 10월에 홍수가 끝나면 경작지에는 홍수에 의하여 상류에서 운반되어 온 비옥한 흙이 쌓이고, 이곳에 씨를 뿌리면 다음해 2월에는 엄청난 곡물을 거둬들일 수 있게 된다. 만일 나일강의 홍수가 일어나지 않거나 수위가 낮으면 경작지의 면적이 한정된다. 그러면 다음해는 흉년이 닥치고 기근이나 재해의 원인이 된다. 이집트에서는 홍수가 나는 것이 재해가 아니라 축복인 것이다. 나일강은 풍요로운 경작지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교통의 간선으로도 이용되었다. 테베에서 카이로까지의 약 900km에 이르는 거리는 홍수 시기에는 배를 타고 2주일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집트 문명의 발전은 나일강의 홍수와 항행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집트인들은 오시리스(Osiris) 신의 죽음과 부활이 나일강과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나일강에 홍수가 일어나 식물들의 파종이 순조롭고 풍성한 수확을 누리는 것은 오시리스 덕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오시리스의 몸이 녹색으로 그려지는 것은 녹색이 재생을 상징하기 때문이며, 그가 식물의 신으로도 불리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나일강의 홍수가 해마다 되풀이 되듯이 이집트인들은 사람들의 부활까지도 일회적이 아닌 반복적인 것으로 본다. 오시리스는 땅의 신이 주관하는 신들의 심판대 앞에서 자신의 입장을 변호한다. 신들은 오시리스의 주장을 인정하고, 그의 후계자로 오시리스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선포한다. 이로써 오시리스의 아들이 상 이집트와 하 이집트의 지배자로 인정받게 된다는 해피엔딩으로 오시리스 신화는 막을 내린다. ▲ 이집트의 젖줄 나일강. 이집트는 사막지대임에도 불구하고 7000년 전에 문명이 발생했다. 이집트에 문명이 발생할 수 있는 농경사회가 만들어진 것은 나일 강 때문이다. 나일강이 홍수 때 범람하고 이때 상류에서 떠내려 비옥한 흙과 물로 밀이나 보리를 비롯한 다양한 농작물이 풍부하게 생산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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