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발칸반도의 스위스 슬로베니아
<35> 발칸반도의 스위스 슬로베니아
  • 충청타임즈
  • 승인 2012.03.01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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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슬로베니아 농촌 풍경
그림같은 전원풍경… 삶의 여유를 발견하다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10시 반경 아름다운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출발했다. 2시간을 달려온 우리는 조그만 시골 도시 델리체에 들려 호텔 식당에서 맛있게 버섯 요리로 점심을 먹고 바로 옆에 있는 공원을 구경했다.

공원은 아담하고 조용했으나 내전 당시 총을 든 용사의 동상이 너무 살벌해 보였다. 이 시골 지역에도 내전의 상처가 깊었던 모양이다. 지나간 슬픈 역사를 상징하고 있는 것 같아 애처로웠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슬로베니아를 향하여 출발했다.

오후 2시 10분경 슬로베니아 국경 검문소에 도착하여 출입국 수속을 밟았다. 다른 나라들 보다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입국 수속을 끝내주어 좋은 인상 속에 슬로베니아 땅으로 들어섰다.

슬로베니아로 들어선지 얼마 되지 않아 깨끗하고 넓은 도로와 주변 풍경을 보면서 풍요와 여유로움을 느끼게 했다.

이 슬로베니아는 이번 발칸반도 여행에서 마지막 나라이기 때문인지 더욱 관심이 가는 것 같다.

생소하게 느껴지는 이 슬로베니아는 어떤 나라인가에 대하여 가이드의 설명이 달리는 차속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슬로베니아 전도


슬로베니아는 발칸 반도 북서부에 멀리 떨어져 있는 국가로 서쪽으로 이탈리아, 북쪽으로 오스트리아, 북동쪽으로 헝가리, 남쪽과 남동쪽으로 크로아티아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쪽에 아드리아 해로부터 좁게 만입한 해안선이 코페르를 가운데 두고 남북으로 이탈리아의 트리에스테와 크로아티아의 이스트라 반도를 이으며 25km정도 뻗어 있다.

면적 2만273㎢로 한반도의 11분의 1정도, 인구는 약 200만의 아주 작은 나라이다.

수도는 류블랴나, 슬로베니아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인종은 슬로베니아인이며, 종교는 거의 가톨릭교를 믿는다.

대부분 산악지대와 삼림지대로 이루어진 슬로베니아에는 깊고 비옥한 계곡들이 있으며 수많은 강들이 흐르고 있다.

북서단은 줄리안알프스 산맥으로 이어지며, 이 산맥에서 해발 2864m의 트리글라우 산이 자연경관이 빼어난 지역 위로 우뚝 솟아 있다.

이 지역으로부터 남동쪽으로 슬로베니아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사바 강은 수도인 류블랴나를 우회한 후에 협곡을 통해 구릉진 시골지역을 거쳐 간다고 한다.

슬로베니아의 역사를 간추려 보면 슬로베니아인들은 6세기에 지금의 슬로베니아와 그 북쪽으로 들어와 그들보다 먼저 정착한 아바르족의 충성을 받았다.

627년 사모의 지도하에 슬라브 왕국이 성립했으며, 이 왕국은 사바 강 유역에서 북쪽으로 라이프치히까지를 영토로 삼았다.

748년 이 지역은 카롤링거 왕조의 프랑크 제국에 합병되었으며, 9세기 프랑크 제국이 분할될 때 독일 왕국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독일인들은 슬로베니아인들을 농노의 신분으로 격하시키고 드라바강 북쪽에 있는 대부분의 슬로베니아인 정착촌을 게르만화 했다.

슬로베니아인들이 수세기에 걸쳐 독일인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그들의 주체성을 굳건하게 지켜왔다고 한다.

이렇게 주체성을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주로 이 지역 출신의 로마 가톨릭교 사제들이 실시한 열렬한 교육활동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 후 슬로베니아 영토에 대한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종주권은 13세기말부터 점차 확립되었다.

프랑스 나폴레옹의 짧은 통치기간(1809~14)이 끝난 후 다시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가가 지배권을 차지했다.

1870년대에 남슬라브족(슬로베니아인·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들로 구성된 정치적 연맹을 창설하려는 염원이 표면화되기 시작하여 결국 1890년대에 슬로베니아 최초의 정당들이 결성되었다.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슬로베니아의 정치 지도자들은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1929년 유고슬라비아로 개명)을 세우는 데에 협조하여 그 일원이 되었다. 1918년 12월 베오그라드에서 왕국의 성립이 정식으로 선포되었다.

그러나 1919년 파리 평화회의에서 동맹국들은 슬로베니아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고리치아(고리차)와 그 인접지역을 이탈리아에 할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초 슬로베니아는 주변의 열강들에 의해 분할되어 이탈리아가 남서지역을, 독일이 북동지역을, 헝가리는 보다 작은 지역을 각각 차지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서 슬로베니아인들의 저항운동이 거세게 일어났는데 그중 가장 중요했던 것은 공산주의자들이 이끈 해방 전선이었다.

1945년 연합국이 승리한 후 슬로베니아는 유고슬라비아의 구성공화국이 되었다.

공산정권하에서 슬로베니아는 정치적으로는 베오그라드에 집중된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연맹에 종속되었지만 경제·문화 분야에서는 상당한 정도의 독립을 누렸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회주의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그 뒤 티토 사후 민주화의 열풍으로 유고 연방이 해체될 때 1991년 6월 크로아티아 공화국과 함께 유고 연방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선언했다.

유고연방은 이를 불법이라고 단언하면서 연방군의 첫 공격지로 슬로베니아로 선택하였다.

그러나 90%이상이 슬로베니아인으로 구성된 슬로베니아의 저항에 부딪쳐 분리 독립의지를 꺾지 못하고 1991년 8월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1992년 독립국가가 되었다.

슬로베니아는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등 다른 옛 유고 연방 국가들이 내전으로 인한 참화를 겪을 때에 비교적 내전의 상처 없이 빨리 정치 안정을 이뤄 경제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

더욱이 1992년 유럽공동체(EC)의 인준으로 경제·사회 구조를 서유럽 체제에 맞춰 재편성하는데 성공했다.(브리태니크 참조)

예로부터 슬로베니아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번성했던 지역으로 경제가 발전하였던 지역 중 하나였다.

2004년 5월에 발칸반도 내 국가로는 처음으로 유럽연합(EU)에도 가입하여 경제 사회적으로 개방화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는 나라라고 한다.

2009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이 2만9520$로 발칸반도 국가들 중 최고 수준을 자랑하며 정치안정과 경제발전으로 '발칸반도의 스위스'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한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아주 작은 나라지만 과거 공산주의 나라였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만큼 풍요롭고 자유스러운 분위기가 느껴지는 나라였다.

위로부터 델리체 마을 공원에 있는 내전 영웅의 동상 슬로베니아의 아름다운 고속도로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록의 눈 덮인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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