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사라예보(2)
<32>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사라예보(2)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2.02.09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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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유럽풍의 신시가지인 루치아 거리

다민족·다종교·다문화… 아물지 않은 내전의 상처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우리는 사라예보 사건 기념박물관에서 다시 도심 속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기념박물관을 돌아서 나오니 오스트리아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 부부가 묵었던 그 오이로파 호텔이 정면에 보였다.

이 호텔은 그 사건 후 유명해졌다고 한다. 오스만 시절의 이슬람 유적이 도심 속에 펼쳐져 있는 것을 보면서 이슬람 시장 베지스탄 바자르의 거리를 걸었다.

가옥 구조며 진열된 가게 모습들이 동양적인 냄새가 정말 물씬 풍기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유럽풍의 신시가지인 루치아 거리로 들어섰다.

기독교인 구역이라 하는데 어김없이 그리스정교회와 가톨릭 성당이 있고, 길게 널어선 패션가가 서유럽의 도시 거리 못지않게 화려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스니아는 1878년부터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유럽의 문화와 역사, 건축 양식 등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먼저 보스니아 정교회에 들렀다. 이 정교회는 1889년에 건축되었는데 내전 당시 대부분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내전 후 사라예보에 있는 각종 타종교의 기부금으로 보수되었다고 한다. 여느 정교회와 달리 오색의 스테인드글라스가 특이했다.

보스니아 정교회 예배당을 둘러보고 나와 잠시 걷다 보니 노인들이 둘러서서 체스를 즐기는 광장이 나타났다.

가까운 거리에 사라예보 평화의 상징 기념비와 196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드리나 강의 다리의 작가 이보 안드리치 흉상도 보였다.

그리고 보도블록 속에 1984년 사라예보 동계 올림픽의 심벌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로마 가톨릭 대성당이 있었다.

이 성당은 예수성심성당으로 1889년 로마네스크와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는데 가톨릭 성당 중 가장 큰 규모라 한다.

내부 수리 중이라 입장할 수 없어 외모만 보고 지나쳤다. 다시 조금 걸어 나오니 도로변에 과일시장이 나타났다.

우리는 시장으로 들어가 시장구경도 하면서 과일 값도 알아보고 과일도 각자 조금씩 사기도 했는데, 맛도 좋고 값도 샀다. 과일시장은 베지스트 아케이드 시장이라 했다.

과일시장을 빠져나온 우리는 다시 터키 거리로 향했다.

자갈과 대리석이 깔린 고풍스러운 거리를 걸어서 사라예보 관광의 핵심이 되면서 이곳에서 가장 중요한 이슬람건축물이 있는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에 도착 했다.

웅장하게 높이 솟은 26m의 초록색 돔이 인상적이었다.

이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는 사라예보를 건설한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기념하는 이슬람 사원으로 당시 보스니아를 통치하던 가지 후스레프 베그의 지시로 1530년경 지어졌다고 한다.

이 건축물도 보스니아 내전 중 많은 피해를 입었으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이슬람 국가들의 지원으로 1996년에 완전히 복원되었다고 한다.

이곳은 이슬람교도들에게는 정신적인 안식처 같은 장소라고 한다. 유감스럽게도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다음 들린 곳은 가지 후스레프 베그 모스크에 가까이 있는 오스만 시절의 여관이었다는 모리차한 전통가옥이었다.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되었다고 하는데, 이곳은 예전에는 물건을 싣고 오는 대상들을 위한 숙소였다고 한다.

아래층은 낙타들이 쉬는 곳이었고, 위층은 상인들의 숙소였다고 하는데 매우 넓었다.

위층 숙소는 요즈음 여관식으로 아주 깔끔했는데 이들에게 숙박비를 받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식당으로 개조되어 있었다.

전통가옥을 구경하고 나온 우리는 터키 직인 거리로 들어섰다. 그 전통가옥은 바로 터키 직인 거리 한가운데 있었다.

터키 직인 거리에는 잡화상들이 즐비했다. 직접 손으로 두들겨 만든 은제 동제 차 주전자, 찻잔, 쟁반, 그 외 은 세공품, 전통공예품 악세사리 등 온갖 장식품들이 즐비했다. 정말 가게 차림세부터 동양적이면서 볼거리가 많아 정감이 갔다.

직인 거리를 구경하다 보니 어느덧 비둘기가 많아서 비둘기 광장이라고도 하는 바슈카르지아 광장에 도착했다.

광장 가운데에는 8각정 모습의 목조 건축물이 세워져 있었는데 사라예보의 상징인 세빌리 샘이라고 한다.

세빌리 샘은 1891년에 건축된 샘으로 지금은 맑은 물을 공급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이 이물을 식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이 샘물을 마시면 로마의 트레비분수에 동전을 던지면 다시 로마를 찾게 된다는 말처럼 이 샘물을 마시면 사라예보를 다시 찾게 된다는 얘기가 있다고 했다.

우리는 이 세빌리샘을 약속 장소로 정하고 30분간 자유 시간을 가졌다.

강교장과 나는 미처 보지 못한 바슈카르지아 시장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유럽 최대의 이슬람 도시 사라예보의 문화를 만끽하려 노력했다.

415년 동안 오스만투르크의 지배가 남긴 문화유산은 실로 엄청났다.

약속 시간에 모인 우리는 다시 1차 대전 전몰자 위령탑에서 꺼지지 않는 횃불의 불빛을 보고, 이슬람 묘지 등을 보면서 전쟁의 참혹함에 가슴 아팠다.

내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사라예보는 다민족 다종교간의 가치를 서로 존중하면서 대문을 잠그지 않고 살 정도로 평화로운 사람들이었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금 도시 곳곳에 이슬람과 세르비아정교회, 가톨릭이 공존하는 나라답게 성당과 정교회, 그리고 모스크가 섞여 다민족 다문화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총탄자국이 가득한 건물들, 폭격으로 파괴된 채 그냥 방치된 건물들을 보면서 다민족 다종교간의 충돌의 피해가 얼마나 컷을가를 짐작하고도 남을 만 했다.

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내전이 불과 16년 전의 일이고 보면 겉으론 아문 것 같으나 가슴 깊숙한 곳에 그냥 남아있는 응어리가 보이는 듯했다.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의 운명적인 만남이 결국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치닫게 된 사라예보 사람들, 그들의 깊은 눈빛 속에 내전의 아픔이 묻어 있는 듯 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동서양 문화유산을 간직한 사라예보, 파괴된 내전의 상처를 치유하고 힘차고 밝은 모습으로 다양한 문화를 간직한 도시로 발돋음 해 주기를 간절하게 빌었다.

어느덧 사라예보의 거리에 어둠의 깃이 펼쳐지고 있었다.

 

   
사라예보의 시내 과일시장
   
   
터키 직인 거리 상가들
   
   
바슈카르지아 광장의 세빌리 샘
   
   
 
  사라예보에서 제일 큰 예수성심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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