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돈봉투 정국이라니…
새해 벽두부터 돈봉투 정국이라니…
  • 이재경 기자
  • 승인 2012.01.10 22: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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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이재경 부국장(천안)

정태수 전 한보철강 회장 정도라면 끝까지 버텨 내려나. 지난 1997년 아래 위 입술을 지퍼로 붙여 잠가버린 모습이 만평으로 희화화되고 '모르쇠'란 유행어까지 탄생시켰던 그가 갑자기 떠오른다. 지금 정가에 태풍을 몰고 온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의혹 사건 때문이다.

받았다는 사람은 단 한명 고승덕 의원뿐이다. 나머지는 아무 말도 않거나 돈을 뿌린 인물로 지목된 사람(박희태 국회의장)마저 "무슨 얘기냐"고 '펄쩍' 뛰면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검찰 수사가 곧 시작될 모양인데 국민 대다수는 사실 여부보다 이게 과연 밝혀질까에 더 관심이다. '전적으로' 고승덕 의원의 말을 믿는다는 사람이 더 많단 얘기다. (국민이)돈봉투 살포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다. 우리 정치가 그래 왔고, 그랬던 것을 봐왔기 때문이다.

일단 제1의 정태수가 나온 듯하다. 고승덕 의원이 받은 돈을 돌려줬다고 지목한 2008년 전대 당시 박희태 의장의 비서 K씨(현재 한나라당 모 의원 보좌관)다. 그는 9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4년 전 일이라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검찰이 수사한다면 '1번 타자'로 진술을 하게 될 그이기에 벌써부터 수사는 난망해 보인다.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로 일관된 진술을 할 경우 말이다. 다행인 것은 아직 그가 '아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고 의원이 언론에 "야당도 (돈봉투에)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라고 한 말은 그대로 들어맞았다. 전당대회를 나흘 앞둔 민주통합당에도 불똥이 튀었다. 한나라당 일이 남의 얘기거니 좋아했던 게 불과 며칠. 갑자기 그제 이번 1·15 전당대회에 나선 경선주자가 돈 봉투를 뿌렸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예전 열린우리당 시절부터 (전당대회에서)차비 조로 (경선주자로부터) 몇 백만원을 받는 게 관행이었다'는 증언까지 나와 민주통합당도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도 매우 구체적이다. "경선에 나섰던 후보가 전국 대의원대회 때 50만원을 줬지만 거절했다", "최하 50만원에서부터 지역 책임자에게는 500만원이 건네졌다", "사무국장, 여성위원장 등에겐 100만원씩 줬고 맨 아랫사람들에게는 구두상품권을 돌린다" 등.

당이 곧바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에 착수했지만 결과 여부를 떠나 치명상을 입게 됐다. 상대적으로 여당보다 깨끗한 정당임을 자처해 온 당의 이미지 손상과 함께 과연 15일 전당대회를 제대로 치러낼지마저 불안해 하는 모습이다.

일단 검찰의 1차 화살은 한나라당을 향하고 있다. 민주통합당 관련 의혹 대부분이 아직은 '카더라' 수준이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현직 국회의장, 수많은 현역 의원들이 관련됐기 때문이다. 고 의원의 주장이 사실로 밝혀지면 그 후폭풍도 거셀 것으로 보인다. 당내 선거에서 돈을 받고 대표를 뽑아준 의원들이 줄줄이 검찰에 불려가 처벌을 받는 사태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어제 갑자기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여야 정당의 쇄신작업에 대한 기대치를 국민에게 물어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전국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이 대상이었는데 응답자의 50.7%가 한나라당의 쇄신 추진에 대해 "기대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기대한다"고 한 답변 33.3%보다 훨씬 많았다. "사람들이 바뀌지 않고서는 안된다"는 메시지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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