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든 소들의 슬픈 노래
병든 소들의 슬픈 노래
  • 연규민 <칼럼니스트>
  • 승인 2012.01.10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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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규민 <칼럼니스트>

수많은 소들이 감기에 걸렸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했다. 죄명은 구제역, 형량은 살처분. 사람으로 말하면 사형. 한해가 지난 지금 용케 살아남은 소들도 수난이다. 몸값이 사료값에 미치지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한다. 이번에는 아사형이다. 즉, 굶겨 죽인다. 축산 농민들이 소를 몰고 시위를 하겠다니 상경조차 막는 원천봉쇄를 한다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악법에 헛되게 죽임을 당하는 소들은 시위에 나서면 안 되는가

소는 농촌에서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의 손에 이끌려서도 얌전히 풀을 뜯고, 무거운 짐을 져 나르고, 논과 밭을 다 갈고, 늙어 힘이 빠지면 고기와 가죽과 뼈까지, 아니 내장과 피까지 하나 버릴 것 없이 사람에게 몽땅 주고 가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였다. 한 때 대학을 우골탑이라 불렀다. 농촌에서 대학을 보내려면 가족과 같은 소를 팔아야 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요즘 우리가 소를 대하는 태도는 참으로 염치도 없고 예의도 없다. 어른들이 우리에게 자주 하신 말씀처럼 이렇게 하면 벌 받는다.

소값 파동의 원인은 여럿 있지만 그 중 유통구조가 큰 문제라고 한다. 산지 소값이 턱없이 하락했는데도 음식점의 한우가격은 평범한 가정의 외식에서는 쉽게 주문하기 어려운 특급 상품이다.

거기에 지난해 구제역 파동 이후 상승한 돼지고기 가격도 다시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소비가 위축될대로 위축되었다. 쇠고기 개방 때 나돌았던 소문대로 국내 축산기반은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가?

주변 사람들과 외식을 할 때면 좀 멀긴 하지만 속리산에 있는 한우마을까지 찾아간다. 삼겹살 먹을 돈이면 충분히 품질 좋은 쇠고기를 즐길 수 있다.

광양항을 다녀오면서 황전의 한우영농조합에 들른 일이 있다. 정육코너에서 맘에 드는 고기를 사서 옆에 있는 식당에서 상차림 비용을 내고 먹는 방식이다. 위에 적은 속리산 한우마을과 같은 형태이다. 적은 비용으로 참 맛있게 먹고 푸짐하게 국거리를 사 왔다. 정육코너에선 여러분이 바쁘게 일하고 계셨다. 전국에서 주문이 밀려들어 와 택배로 보내는 작업이다.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고 식당에서 부가되는 부가가치세가 쇠고기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현저하게 값이 적게 드는 것이다.

그러나 쇠고기 유통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산지 소값이 폭락해도 쉽게 쇠고기 값이 내려가지 않는다고 전망한다. 쇠고기가 식탁에 오르기까지 여러 과정을 거치는데 그 과정의 인건비나 물류비용, 식당이나 정육점의 기본적인 유지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란다.

소를 잡아서 상품으로 만들었을 때 형성되는 상품 가격에서 최초 산지 소값이 차지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원하는 것처럼 소비자가 저렴한 가격으로 쇠고기(한우)를 즐기고 산지 소값이 안정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급식당은 나름의 기능이 있으니 그대로 두고 다중이 소비에 참여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생산자들로부터 저렴한 비용으로 구입해서 마음 편히 조리해 먹을 수 있는 식당과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널찍한 유휴지가 있다면 적당한 바람막이를 설치하고 조리대를 놓아주면 시민들이 편하게 이용할 것이다. 이런 형태의 정육점과 식당을 권장하는 것도 방법이겠다.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야 정책담당자들이 신중하게 결정할 일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가축인 소 이상의 의미가 있는 한우를 살리는 일, 나아가 우리 축산업을 살리는 일은 집단 무의식과 같은 시민들의 정서적 유대가 있어야 한다. 한우 생산과 유통에 종사하는 분들과 소비자들이 한우에 대한 끈끈한 애정을 공유해야 한다. 그것이 오랫동안 한국 사람의 곁에서 무한한 희생과 헌신을 다해 온 한우에 대한 예의다. 병들었다는 이유만으로, 사료값도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죽어간 은인에 대한 인간의 예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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