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아드리아 해의 진주 드브로부니크
<27> 아드리아 해의 진주 드브로부니크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12.23 06: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세월도 비켜간 듯 잘 보존된 아름다움

중세기 고풍스런 건물·비탈길 골목 구석구석 역사 깃든 해안도시

유네스코, 1979년 세계문화유산도시 지정 … 크로아티아의 보물

크로아티아의 나라에 들어와서도 버스는 해안도로를 계속 달리고 있었다. 버스 차창으로 들어오는 풍광들이 어떻게나 아름다운지 눈을 떼어 놓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에메랄드 빛의 푸른 아드리아 해를 끼고 펼쳐져 있는 드브로부니크의 아름다운 모습이 우리들 시야에 들어오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가슴을 파고드는 듯 성벽 해안을 어루만지고 넘실대는 부드러워 보이는 푸른 파도, 얕은 산비탈에 붉은 기와를 머리에 이고 늘어서 있는 집들이 벌써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아름다운 도시가 오늘 이렇게 존재하기까지에는 숨은 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1991년 10월 크로아티아의 내란이 치열할 때 신유고슬라비아 해군이 드브로부니크를 향해 포격을 퍼붓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 학술원 회장 장도르 메송(당시 61세)은 "유럽 문명과 예술의 상징이 불타고 있는데도 유럽 선진국들은 팔짱을 끼고 있다. 내 한 몸 총알받이가 될지라도 이 도시는 지켜져야 한다"라고 서구 지도자들을 향해 절규하면서 범선을 타고 불바다로 뛰어들었다고 한다. 프랑스 최고 지성인의 이 한마디는 전 세계에 크로아티아의 드브로부니크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UN의 중재를 이끌어 내어 전쟁을 종식시키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오후 1시가 훨씬 넘어서야 드브로부니크의 서쪽 성벽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높고 웅장한 성벽의 아치형 문인 필레게이트를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서자 오른쪽으로 아름다운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는 16개의 구멍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오노프리오 분수대가 있고, 성안 구시가지의 한가운데를 시원하게 가로 질러 놓은 도로가 나타났다. 이름 하여 플라차 거리라 했다. 동쪽 선착장 앞에 있는 성문까지 280m의 거리라 한다. 이 거리의 바닥은 화강암 대리석으로 깔려 있었는데 오랜 역사를 말해주듯 반질반질 닳아 있었다. 드브로부니크가 처음 형성되던 7세기경에는 이 플라차 거리는 원래 수송역할을 하던 운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이 운하를 따라 사람들이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도시가 형성되고, 도시를 방어하기 위하여 성을 쌓으면서 수로를 매립하여 도로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도로 양쪽으로는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는데, 1층에는 노천카페 레스토랑 상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그리고 도로 양측 중간 중간에 비좁은 골목길들이 늘어서 있었다. 이 양쪽으로 늘어선 좁은 비탈길 골목과 그 안으로 오랜 역사가 깃들어 있는 집들이 빼곡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이곳을 찾은 역사가들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날아와 중세시대로 되돌아간 착각에 빠진다고 한다.

우리는 이 비탈진 골목길 변에 있는 한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현지 식으로 맛있게 먹고, 중세기의 고풍스러운 집들과 골목길을 감상하면서 다시 플라차 중심 거리로 나와 관광길에 나섰다. 세르비아 정교회, 도메니크 교회, 성 블라시우스 교회, 프란체스코 수도원과 성당, 그리고 역사박물관, 스폰자 궁전, 렉터 궁전, 성모승천 대성당 등 여러 건축물들을 나도 중세시대로 되돌아 간 듯한 느낌으로 살펴보았다. 그중에서 몇 가지만 기술하고자 한다.

프란체스코 수도원은 14세기에 건축된 바로크 양식의 교회로 17세기 크로아티아를 휩쓴 지진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입구의 위쪽에는 피에타상 조각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아름다운 회랑이 있었다. 회랑 왼쪽에는 유럽에서 세 번째로 오래된 약국이 있는데 지금도 운영되고 있었다. 왼쪽에는 종교박물관이 있었다.

플라차 거리의 동쪽 끝에 있는 스폰자 궁전은 이름이 궁전이지 왕이 살던 곳이 아니라 처음에는 세관, 그 다음은 화폐주조장으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드브로부니크의 각 기관 자료보관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스폰자궁의 우아한 종탑은 1444년에 건축되었다고 하는데, 높이가 35m이고, 맨 위는 왕관 모양으로 되어 있고, 그 밑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 속에 커다란 종이 놓여 있었다. 한쪽 면에 원형으로 된 시계가 있었다.

스폰자 궁전 정면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조금 걸어가면 좌측에 고딕 르네상스양식의 렉터 궁전이 있었다. 이 렉터 궁전은 건물 안과 밖으로 15세기에 아름답게 조각을 장식한 건물인데 특히 섬세하게 조각된 기둥과 안쪽 뜰의 계단은 고풍미가 넘쳐났다. 안쪽 뜰은 여름 축제 때 공연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고 한다.

렉터 궁전 옆에 있는 성모승천 대성당은 12세기 영국의 사자왕 리처드 1세가 십자군 원정시 해상 조난을 당했다가 드브로부니크 인근 섬에서 구조되었는데, 이에 대한 감사로 그가 재정지원을 하여 세운 성당이라 한다. 1667년 지진으로 파괴된 후 1713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축되었다고 한다. 벽의 성화들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역사적인 유적 유물의 건축물들을 살펴본 후 좁은 골목 속의 상점들까지 두루 구경을 한 우리는 유럽 각지의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다는 '성벽 위 걷기' 관광에 올랐다. 8세기부터 16세기까지 공사가 계속되었던 철옹성 같은 성벽은 총길이 2Km, 높이 25m에 성벽의 두께 3m라 한다. 대부분 두 겹으로 세워진 이 성벽은 오랜 세월 드브로부니크의 보호막이 되어 지켜져 왔고, 또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어 크로아티아의 보물이라고 한다.

성벽에 올라 일주를 하면서 보는 풍광은 참으로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성안 사람들의 붉은 지붕의 건축물들과 대리석의 골목길, 그 사이로 하늘을 찌를 듯 치솟은 성당의 첨탑들, 초록의 수액을 내뿜고 있는 사이프러스와 올리브 나무들. 천년의 세월이 비껴간 듯 잘 보존되어 아름다움을 빛내고 있었다. 유네스코는 1979년 이 구시가지 도시 전체를 세계문화유산도시로 지정하였다고 한다. 거기다 에메랄드 빛 아드리아 해가 끝없이 펼쳐지고 있는 그 사이사이의 아름다운 해안 절경, 부두 가득 정박해 있는 요트들.

이 모두를 보면서 고즈넉한 아름다움과 평화만이 느껴질 뿐 이 도시 어디에도 포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드리아의 진주'란 말이 헛말이 아님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일찍이 극작가 버나드 쇼는 "지상에서 낙원을 찾고 싶다면 드브로부니크로 가라"고 말했다지 않는가. 참으로 고풍미 넘치는 아름다운 해안 도시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