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2세기의 골목에서 21세기 사람을 만나다
<25>12세기의 골목에서 21세기 사람을 만나다
  •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12.09 08: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천혜의 요새를 자랑하는 고색창연한 코토르

엄갑도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도시 지정
광장 둘러싼 건축물 중세풍 향취 물씬
809년 건립 '유럽 最古' 트리폰 대성당
길이 4.5km·높이 20m 성벽 감탄 연발

새벽 5시에 잠이 깼다. 어제 늦게 잠자리에 들었음에도 이렇게 일찍 잠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게 되어 신기했다. 룸메이트 강 교장도 잠이 깨어 있었다.

우리 둘은 첫새벽에 호텔을 빠져나와 휴양도시로 유명하다는 부드바 시내 구경 겸 산책길에 나섰다.

얼마 걷지 않아 바다로 나가는 길이 있어 바다로 찾아들었다. 에메랄드빛 파란 바다가 나타났다. 그 유명한 아드리아 해였다. 검회색의 결 굵은 모래사장이 이색적이었다.

시원한 아드리아 해 바람결 속에 오랜 세월 바다를 주름잡던 영웅들의 숨결이 묻어 있는 듯했다. 약 1시간가량 해변과 시내를 산책한 후 호텔로 돌아와 아침식사를 했다.

아침 8시 40분경 유네스코 문화유산 지정을 받은 코토르를 향해 부드바를 출발했다. 오랜 문명 도시로 유명한 부드바의 문화유적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지 못하고 일정 관계로 이렇게 훌훌 떠나게 되어 아쉬움이 컸다. 부드바에서 코토르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9시경 코토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브첸산(1749m)의 높은 산 중턱에 둘러선 성벽의 성 요한 요새를 경이로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산과 바다가 절경을 이루고 있는 코토르 성벽 문 앞에서 버스는 멈췄다. 바다에는 큰 크루즈 배들이 정박하고 있었다.

이 코토르를 품고 있는 코토르 만(灣)은 바다가 육지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피요르드 지형으로 마치 바다가 호수처럼 보이지만 아드리아 해의 바닷물이 산속 깊숙이 들어와 만(灣)을 이루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이 코토르에는 고대 로마시대인 BC 168년부터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고 유스티아누스 1세 때 이곳에 요새가 건립되기 시작한 역사적인 도시라고 한다. 고대부터 중세와 현대가 완벽하게 공존하고 있어 1979년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로 지정되어 관광 명소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고 한다.

바다 쪽으로 난 성벽 서문을 통하여 성안으로 들어서니 넓은 광장 정면으로 높은 시계탑이 바로 보였다. 이 시계탑은 1902년에 지어졌는데 약속의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광장 주변에는 야외 카페와 레스토랑들이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첫눈에 보아도 광장 주변에 늘어선 건축물들의 양식과 그 건물들에서 흘러넘치는 때깔들에서 중세풍의 향취가 물씬 풍겨 오고 있었다. 성안에는 여러 개의 교회들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으로 트리폰 대성당, 니콜라스 성당, 성 루가 성당 등이 있었다.

트리폰 대성당은 유럽에서 제일 오래된 교회로서 809년에 처음 지어졌다고 한다. 1166년에 지금의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재건되었고, 그 후 지진으로 크게 손상을 입어 2009년부터 다시 수리 중이라고 하는데 지금 모습은 2009년에 증축된 모습이다. 건물 왼편에 809, 오른편에 2009년도를 기록해 두고 있었다. 참 소박해 보이는 성당이었다.

니콜라스 성당은 루카광장의 한편에 있는 세르비아 정교회로 19세기에 지어졌는데 화재로 소실되어 20세기에 네오 비잔틴 양식으로 개축되었다고 한다.

또 성 루카 성당은 12세기에 지어진 성당으로 이 성당은 로마, 비잔틴, 코토르 양식이 고루 갖춰져 있는 성당으로 지진에도 끄떡없이 견디어 왔다고 한다. 17세기까지는 가톨릭 성당이었으나 그 후 동방 정교회로 바뀌어 가톨릭과 동방정교회가 같이 사용한 특이한 교회였다. 마을의 중앙에는 17세기에 만들었다는 오래된 펌프식 우물이 있었는데 지금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중앙 광장을 중심으로 한 교회와 시설들을 둘러본 우리는 각자 흩어져 마을 뒷길들을 살펴보는 자유 시간을 가졌다.

강 교장과 나는 마을 뒷길을 찾아 돌았다. 오래된 고색창연(古色蒼然)한 건물들에 돌로 깔린 좁은 골목길들은 반들반들하게 윤이 나고 있었으나 미로와 같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 좁은 골목이 어느 쪽으로 가든 막히는 법이 없이 여러 갈래로 갈라지면서 이어지고 있었다. 옛날에는 이 모든 좁은 골목길들이 성 밖으로 나가는 길로 이어지고 있었다고 한다. 옛날 해적들의 침략시 피란을 쉽게 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모진 풍파를 견디면서 늠름하게 서 있는 천년 묵은 돌집들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졌다. 참으로 오래되어 예스러운 정취가 그윽하게 풍기고 있었다. 한참을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길을 잃어 헤매다 가까스로 길을 찾아 광장으로 나왔다. 과거 베네치아 공국의 지배를 받아 베네치아의 거리와 골목의 모습이 많이 닮았다고 한다. 그래서 12세기의 골목에서 21세기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표현도 쓰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다시 광장을 돌아 성벽 위로 올라가 보았다. 성벽은 험하고 높은 바위산인 로브첸산 밑에 세워져 있었다. 낮은 도시 주변은 해자(垓字-성 밖으로 둘러 판 못)로 둘러쳐져 있고 앞은 바다로 면하고 있어 침략에 대한 방어를 위하여 천연 요새로 너무나 훌륭해 보였다. 실제로 1657년 오스만 투르크의 군대들이 코토르를 점령하기 위하여 2달 동안 진을 치고 싸우다 성벽이 워낙 견고하여 결국에는 퇴각하고 말았다고 한다. 저 멀리 로브첸 산 중턱 가파른 암석 지형 위에 늘어서 있는 성벽들은 성 요한 요새로 중세 시대 세워진 것으로 코토르를 지켜온 역사의 유적지라 하는데 올라가 보지 못하고 이렇게 눈으로만 쳐다보고 가야하니 안타까웠다. 성 위에서 바라본 코토르 구시가지는 그리 크지 않은 작은 도시였다.

자연 지형과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 낸 천혜의 요새! 총길이가 4.5Km에 이르고 성벽의 높이가 20m에 이르는 이 성벽은 오늘날까지 원형대로 잘 보존되고, 이 성안에 있는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가 공존하고 있는 구시가지 전체를 유네스코는 1979년에 세계문화유산 도시로 지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튼튼하게 축조된 성벽 위를 이곳저곳 걸어보았다. 전쟁시 성위를 달리면서 전투를 지휘하던 장군들의 외침, 북소리도 들리는 듯했다. 애환의 역사가 성 위에서 어른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바다와 산, 고색창연한 성안 도시와의 어울림을 다시 한 번 감상하면서 천천히 성벽을 내려왔다. 어느새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우리는 들어왔던 서문을 통해 성 밖으로 빠져 나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