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센 개방화의 물결… 경제발전 올인
거센 개방화의 물결… 경제발전 올인
  • 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11.24 20: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 지나는 마을마다 눈에 띄는 벙커

험준한 산악도로를 거쳐 알바니아의 수도까지 오는 데는 멀고 먼 길이었다. 산세나 지형이 험준하고 웅장했다. 산길을 벗어나자 농원이 펼쳐지면서 군데군데 농촌마을이 나타나곤 했다. 지나는 마을마다 민둥머리를 내밀고 있는 이글루 모양의 벙커가 눈에 계속 띄고 있었다. 40여 년간 폐쇄적·공산정권을 이끌었던 독재자 엔베르 호자가 모든 주변 국가들과 관계가 좋지 않아서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전쟁 공포로 만든 벙커들이라 한다.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만든 벙커 수가 전국에 75만개가 넘는다고 하니 국력의 손실이 얼마나 컸을까. 동화 속 그림같이 보이던 마케도니아의 농촌과는 달리 지나치는 농가들의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쓸쓸하게 보였다. 목가적이기보다는 낙후된 농촌의 모습이 역력했다.

오후 4시 30분경에 알바니아의 수도 티라나에 진입할 수 있었다. 티라나는 1920년 이후 이 나라의 수도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행정의 중심지로 인구 40만 명이 사는 최대 도시이다. 버스는 이 도시의 가장 중심지로 번화하다는 스칸데르베그 광장에서 멈췄다. 이 광장은 티라나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제일 먼저 찾는 곳이라 한다. 버스에서 내린 우리는 국립극장이라는 오페라하우스를 끼고 걸어 나갔다. 러시아가 지었다는 이 오페라하우스는 이곳에서 명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도시의 규모에 비해 도로도 넓고 광장도 넓고 건물들도 컸다. 이 모두가 공산주의의 영향이라 한다.

거리에는 히잡과 차돌을 두른 여인들도 꽤 많이 걸어 다니고 있었다. 오페라하우스 계단을 내려서자 그 유명한 시계탑과 에뎀베이 모스크가 나타났다. 기도하는 시간을 알리는 시계탑은 1830년에 세웠는데, 1928년에 높이가 35m로 개조되었고 내부에는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90개의 계단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1793년에 완성되었다는 둥근 지붕과 높이 솟은 첨탑의 에뎀베이 모스크는 그리 큰 규모는 아니나 이 티라나에서는 상징적인 건물이라 한다. 모스크 천장 아래 벽면을 장식한 무늬가 매우 아름다웠다. 국민의 70%가 회교도이고 나머지가 알바니아정교 및 로마 가톨릭 신자들인데, 공산독재정권시대인 1967년 모든 종교 활동을 금지하고 무종교국가임을 선언한 바 있었으나 1989년 이래 사회통제완화 차원에서 종교 활동이 재개되었다고 한다.

◆ 무종교국가에서 종교활동 재개

모스크에서 멀지 않는 곳에 민족의 영웅으로 존경받는 스칸데르베그의 기마상이 우뚝 서 있었다. 그는 15세기에 이 나라 출신의 오스만 투르크의 장군이었으나 후에 오스만 투르크에 저항해 싸운 알바니아의 영웅으로 알바니아의 용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티라나 도시의 중심지 광장도 그의 이름을 따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 기마상 옆으로 시내 한복판 여기저기가 파헤쳐져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어수선 하기가 이를 데 없었다. 때마침 울려 퍼지는 애잔 소리까지 겹쳐 소란스러웠다. 모스크 뒤편 저쪽이 시청사라는데 바라만 보았다. 다시 위쪽 역사박물관 쪽으로 돌아 나오는데 무수한 차량들이 쉴 새 없이 달린다. 마구 빵빵거리면서 달리고 있었다. 사람보다 차가 우선이었다. 먼저 가는 사람이 우선이고 차선도 없는 알바니아였다. 교통법규가 엉망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매연이 심했다. 독일에서 수입한 고물차들이 폐차해야할 차들로 변했는데 폐차를 하지 않아 매연을 마구 뿌리고 다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사람보다 車가 우선… 심한 매연

국립역사박물관은 알바니아 최대(最大)의 아름다운 박물관으로 손꼽힌다고 하는데 전면에 커다란 모자이크 벽화가 건물을 덮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알바니아의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한눈에 볼 수 있고, 공산치하의 흔적들도 접할 수 있다고 하는데, 우리는 더 많은 다른 시설을 구경하기 위하여 시간 관계상 내부는 들어가 보지 못했다. 그 옆으로는 알바니아 최고(最高) 건물인 15층짜리 티라나 인터내셔널 호텔(Tirana International Hotel)이 우뚝 솟아 있었다.

동쪽으로는 극장, 레스토랑, 카페, 화랑이 갖춰진 문화 궁전이 있었고, 국립도서관(National Library)의 출입구는 건물 남쪽에 있었다. 정부 각 부처 등 대부분의 중요한 건물들이 주로 스칸데르베그 광장 주변에 위치하고 있었다. 길 끝 맞은편에는 알바니아 국립대학 입구가 보였다. 광장을 조금 벗어난 길에서는 노변에 중고품노점을 펼쳐놓고 지나가는 행인들과 흥정을 하고 있는 장면도 더러 볼 수 있었다. 가난한 나라라 공산품이 매우 귀하다고 한다. 노변 카페에서는 남자들이 모여앉아 담소들을 나누고 있었다. 알바니아는 남자들 천국이라고 한다. 여자들은 아이들 기르고 집안일 다 돌보면서 돈벌이 일 까지 하는 것이 보통이고 남자들은 저렇게 카페 같은 곳에 모여 정치에 관한 토론이나 벌린다고 한다. 특히 농촌에서는 거의 여자들이 농사일을 한다고 한다. 마케도니아에서 알바니아로 오는 도중 알바니아 산비탈 농장에서 여자들이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시간을 아껴가며 이 거리 저 거리를 기웃거리면서 살펴보았다. 알바니아 사람들은 다른 유럽 사람들에 비해 체구는 좀 작아보였으나 이목구비는 뚜렷해 보였고 인물들이 좋았다. 특히 여자들이 아름다웠다. 가이드 말에 의하면 이곳 알바니아 사람들은 남슬라브족과 달리 그리스인들을 닮아 미인들이 많다고 했다.

◆ 남자들은 놀고 여자들은 일하고

공산주의 정권에 의해 매우 극심하게 황폐해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하여 생활·문화 수준이 낙후되고 가장 가난한 나라로 전락한 알바니아! 지나친 폐쇄성과 외국인을 기피하는 성향으로 한때 세계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영공을 지나는 국제 항공기에 대한 비행 허가를 내주지 않았던 나라! 이제 개방화의 물결을 타고 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고 외국 여행자들을 수용하면서 경제발전을 하기 위하여 몸부림치고 있는 티라나를 보면서, 부디 경제발전을 성취하여 부유한 나라가 되어 주기를 마음속으로 빌어 주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