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비상의 날개 펼치는 독수리의 나라
새로운 비상의 날개 펼치는 독수리의 나라
  • 엄갑도/전 충북중앙도서관장
  • 승인 2011.11.17 19: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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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갑도의 발로쓰는 발칸반도 여행기
<22> 발칸의 최빈국 알바니아

산 속 곳곳 전시용 벙커 눈길

기원 전부터 외국 침략 잦아

20C 폐쇄정치·가난의 역사

21C 정치·경제 성장 첫걸음

아름다운 오흐리드 호수변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식당에서 현지식으로 맛있는 점심을 먹었다. 오후 1시 조금 넘어 오흐리드를 출발한 버스는 오흐리드를 벗어나자 바로 높은 산비탈을 치달아 오르기 시작했다. 올리브 나무가 많은 농장 등 산 비탈을 이용한 목축농장들도 많았다. 해발 1,000m-1,200m 사이의 높은 산등성이 좁은 길을 따라 달리던 버스가 30여분 지나자 알바니아 국경 검문소가 나타났다. 국경 입국 절차를 밟아 알바니아 국경을 넘자 높은 산 중턱에 군데군데 구축해 놓은 전시용 벙커가 보였다. 자국을 방어하기 위해서 전쟁 공포로 만든 벙커들이라 한다. 참으로 전쟁이 많았던 나라였음을 알 만 했다.

높은 산 고개를 돌고 돌아 산속을 내려오고 있었는데 주변의 회백색을 띤 암반 산들은 웅장했으나 민둥산에 가까울 정도로 나무들은 없고, 또 가파른 절벽 산들이 험상스럽기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는 좁은 산간도로 S자형 길을 수없이 돌고 도는데 대형 버스가 내려오기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지 운전기사는 연신 비지땀을 흘리는 듯했다. 이렇게 힘들게 내려오고 있는 산길 도로변에 군데군데 쓰레기들이 쌓여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알바니아를 찾아드는 관광객들에게 참으로 나쁜 인상을 심어주고 있었다.

알바니아란 도대체 어떤 나라인가.

동쪽은 마케도니아, 남쪽은 그리스, 북쪽으로는 몬테네그로, 세르비아의 코소보와 접하며, 서쪽은 아드리아 해에 면하고 바다 건너로는 이탈리아가 있다. 면적은 2만 8,703로 우리나라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한 정도 크기의 나라, 인구는 316만 6000명 정도이다. 수도는 티라나이고 공용어는 알바니아어를 사용하고, 정식 명칭은 알바니아 공화국(Republic of Albania)이다. 알바니아인은 자기 나라를 슈키페리야(독수리의 나라)라고 부른다. 남북간 340km의 길쭉한 나라이며, 해안을 따라 뻗어 있는 너비 15~35km의 좁은 평야부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산지이다. 평야부의 바로 동쪽은 해발고도 500-1,000m의 구릉부이고, 거기서 디나르알프스 산계의 2,000m의 산지로 이어지며, 최고점은 마케도니아와의 국경에 있는 코라프산(2,753m)이라고 한다.

알바니아의 역사를 간략히 살펴본다면, 알바니아의 총인구 중 알바니아인이 97%를 차지하며 거의 단일민족국가라고 할 수 있는데, 알바니아인은 고대 일리리아인의 자손이라고 하며, 발칸에서 가장 오래된 민족이다. AD 4세기 이전의 500년 동안 로마 제국의 일부였으며, 이후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4-15세기 투르크족의 침략이 있기 이전에는 고트·불가리아·세르비아 등 이민족의 침입이 잦았다. 1479년 투르크 령이 됨에 따라 그리스도교에서 이슬람교로 개종해야 했다.

이스마엘 케말을 지도자로 하는 독립운동으로 1912년 11월 독립을 선언하였다. 1912년 12월 런던회의에서 발칸전쟁의 전승국들은 알바니아의 독립을 인정하고 통치자로 독일의 황자(皇子)인 빌헬름 비드를 선정하였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재차 주변국의 주장이 거부됨으로써 임시정부 수립이 가능하였다. 1920년 국제연맹에 가입한 후에는 정파 간 분열로 혼란이 계속되었으나 1925년 아메트 조그가 정권을 장악하고 1928년에는 조그 1세가 왕위에 올라 1939년까지 통치하였다. 그는 아시아적 통치술과 서구적 개혁을 결합하여 근대화를 시도하였으며, 이를 위한 국제적인 지원을 이탈리아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의 정치적·군사적 종속관계는 심화되어 결국 1939년 파시스트 이탈리아에 병합되고 말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한때 독일군이 점령한 바 있었으나 1944년 11월 철수하자 엔베르 호자를 지도자로 하는 민족해방전선이 정권을 장악하고 공산국가를 수립하였다. 호자는 1985년 사망 시까지 40년 동안 통치하면서 알바니아노동당을 중심으로 엄격한 스탈린주의 노선을 견지하였다. 1945-48년은 유고슬라비아, 1948-61년은 구(舊)소련, 1961-72년은 중국과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등 대외관계의 변화가 있었으나,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폐쇄정치를 표방하여 왔다. 1969년에는 바르샤바조약기구에서 탈퇴하였으며 코메콘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한다. 1985년 호자의 후계자로 라미즈 알리아가 정권을 장악하자 고립정책을 탈피하고 실용주의 노선에 입각한 대외개방정책으로 전환하여 그리스·이탈리아·터키와의 관계를 강화하였다. 대내적으로는 경제적 침체와 낙후성을 탈피하기 위한 체제개혁을 시도하였으나 정치구조의 보수성이 여전히 존속함으로써 한계가 있었다. 사회적 통제를 완화하고 문화부문의 창조적 사고의 제고를 강조하였으나 알바니아노동당의 당규와 마찰을 빚어 근본적인 개혁은 불가능하였다. 1989년 동유럽 국가의 민주화 물결은 알바니아가 체제개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당제가 허용되고 1992년 인민회의에서 살리 베리샤를 국가수반으로 하는 민주정부가 수립됨으로써 과도기적 체제를 청산하였다. 마르크스적 헌법체계를 파기하고 국가명도 알바니아 공화국으로 변경하였다.(네이버 백과사전 참조)

알바니아의 경제는 어떠한가. 국토의 77%가 200m 이상의 산악·구릉지역으로 농경지가 적다. 전반적으로 목축업과 지중해식 농업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전에는 농촌 인구가 90% 가까이 되었으나 식량자급을 이루지는 못하였고, 공업·광업도 개발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철도 또한 갖추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전쟁이 끝난 후 국내 질서 회복과 경제 난국 타파를 추진하고 있다. 몇 차례의 5개년계획을 통해서 공업화를 추진했다. 결과는 아직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2009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3,830$밖에 되지 않는, 발칸반도에서 제일 못사는 최빈국이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수천 년 동안 발칸반도의 열강과 이웃나라들에 의해 시달리고, 최근에는 공산 장기독재에서 시달리다, 이제 민주주의를 향해 첫걸음을 떼면서 외국과의 관계개선을 하고 외국 여행자들을 수용하고 있는 나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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