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로스쿨’과 법률시장
‘위기의 로스쿨’과 법률시장
  • 한인섭 <사회부장>
  • 승인 2011.11.14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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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주장
졸업을 앞둔 법학전문대학원생(로스쿨)들의 자살이 잇따라, 교내에 ‘심리상담 프로그램’까지 도입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대 로스쿨 얘기인데 재학생 2명이 연이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택했다. 전북대에서도 같은 사건이 발생해 로스쿨 전반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대학들이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내년에 배출될 전국 로스쿨 졸업생 1500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고급 인력의 대량실업 우려가 높은 상황에서 터진 일이라 결코 예사롭지 않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더라도 이들을 수용할 법조계의 시각은 서울이나 지방을 막론하고 달리 받아들이는 모양이다. 기존 사법시험 합격자와 똑같은 대접을 하기는 어렵지 않냐는 시각이 폭넓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들 중 극소수는 판·검사로 진출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은 로펌 등 변호사 업계로 진출해야 할 처지라는 점에서 또 다른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치열한 입학경쟁과 엄정한 학사관리, 변호사 시험까지 천신만고 끝에 법조계 입문을 앞두고 있는 로스쿨생들의 현주소이다. 대학 선정부터 치열한 경쟁을 벌인 끝에 충북대를 비롯해 전국 25개 대학에 설치된 권역별 로스쿨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로스쿨 졸업생 ‘대량실업 우려’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자 법조 3륜의 가장 큰 축이랄 수 있는 대법원이 최근 대책을 내놓았다. 졸업생 가운데 법원 업무를 보조할 재판연구원을 선발한다는 방침인데 수용인원이 100명에 불과하다. 법무부는 법원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검찰 로클럭(법률연구원)’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그러나 예산 등을 감안하면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한다. 법무부는 매년 100명 안팎의 검사를 선발하지만, 이는 사법연수원생들과의 경쟁이 전제된 것이어서 로스쿨 출신 몇 명이 임용될지 장담하기 어렵다. 변호사도 마찬가지이다. 마냥 수용 가능한 게 아니라 150~200명 수준이 될 것이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게다가 한·미 FTA가 체결되면 미국 변호사의 국제공법과 미국법에 대한 자문 서비스가 단계적으로 가능해진다. 1단계로 외국법 자문사라는 명칭의 변호사들이 기업에 대한 법률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양국 로펌들의 사안별 업무 제휴도 가능하다. 3단계로는 국내 로펌과 합작사업체 설립을 통한 국내 변호사 고용 등 법률서비스 양태가 확 달라진다. 바야흐로 시장통 2층 건물에서 동전을 던지면 변호사 머리에 떨어진다는 미국과 같은 법률서비스 구조에 근접한 상황이다. 업계 내부적으로는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더욱 심화되는 형국이기도 하다.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 법률서비스이고, 고비용 구조이다. 대량 실업이 예고될 정도로 문제라는데 법률시장은 전혀 탄력성이 발휘되지 않는다. 오히려 ‘로펌’이라고 하는 운영 형태가 고비용을 부추기는 역할을 한다. 지방도 마찬가지여서 일반인들의 서비스 접근성을 차단하는 부작용도 종종 초래한다.

로스쿨생들의 법조계 진입이 법률서비스 제고와 고비용 구조 개선에 초점이 맞춰져야 하는데 엉뚱한 방향에 쏠리고 있다. 취업이나 처우는 2차적인 문제이지, 본류는 아니라는 점이다.

변호사 업계는 로스쿨 문제가 시장 규모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도입한 결과라고 탓할 수 있으나 일반의 시각은 그렇지 않다. 정부와 ‘법조 3륜’이 고민해야 할 것은 어떻게 법률시장의 ‘거품’을 제거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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